[르포] “여수MBC 지켜내자”…창립 55주기, 시민의 결의로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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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5-08-28 10:54:23
수정 2025-08-28 11:34:15
고병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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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식 가득 메운 1천여 명, 구호와 피켓으로 이전 반대 한목소리
박종길 공동위원장, “방문진도 시민 뜻 외면 못할 것”…강력 대응 천명

[서울경제TV 광주·전남=고병채 기자] 27일 오후 2시, 전남 여수시민회관 앞은 이른 시간부터 북적였다. 행사 시작 전부터 모여든 시민들은 입구에 설치된 서명부에 이름을 적고, ‘여수MBC 순천 이전 반대’라는 글귀가 적힌 메시지판에 각자의 의견을 남겼다.
“여수MBC는 반드시 여수에 있어야 한다”, “시민 없는 이전은 의미 없다” 같은 문구들이 이어지며, 시민들의 뜻이 한눈에 드러났다. 피켓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결연함이 묻어났다.

이번 출범식은 여수MBC 창립 55주기에 맞춰 열렸다. 정기명 여수시장은 그간 폭염 대응과 현안 처리로 휴가를 쓰지 못한 데 이어, 이번 주 예정된 휴가마저 미루고 출범식 참석을 선택했다. 그는 창립 55주기를 기점으로 이날을 출범식 날짜로 정해 시민과 함께하는 상징적인 날로 만들었다.
1층은 일찌감치 자리가 찼고, 2층까지 빼곡히 들어선 시민들로 회관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여수시 갑·을 지역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각 시민단체도 이견 없이 같은 목소리를 내며 오랜만에 진정한 연대의 힘을 보여줬다.
무대에서는 여수MBC 순천 이전 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의 경과보고와 3명의 공동위원장 발언이 이어졌다.

정기명 시장은 “오늘 우리는 여수MBC 지역 존치와 순천 이전 반대라는 하나 된 시민의 뜻으로 대책위를 출범시켰다”며 “나누면 무거운 짐도 가볍고, 함께 가면 불가능도 가능하다. 여수MBC에는 27만 시민이라는 든든한 후원군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단순히 방송사 내부 문제가 아니라 자칫 여수와 순천 간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우려”라며 “시민들의 자존심과 지역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은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인숙 여수시의회 의장은 한 달 전 삭발 투쟁을 언급하며 “여수MBC는 절대 순천으로 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졸속 이전은 용납할 수 없다. 오늘 출범한 대책위는 시민 의지를 모으는 굳건한 중심축이 될 것이고, 의회도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순천 이전 강행은 결국 동부권 전체의 분열을 불러올 수 있다”며 “시민을 무시한 이전 추진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종길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은 창립 55주년에 축하가 아닌 절박함으로 모였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난보다 더 큰 문제는 시민을 배제한 비민주적 절차”라며 방송법이 명시한 공공성과 지역성의 책무를 지적했다.
이어 “비민주적 절차로 진행된 이전 계획의 즉각 중단, 시민 공론화 절차 보장, 지속가능한 경영 방안 마련을 위한 협의체 구성, 시민 무시에 대한 공식 사과와 참여 보장”을 요구하며 “우리의 언론,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시민 모두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출범선언문은 여수종고회 우성주·여계원 씨가 낭독했다. 선언문은 “여수MBC 순천 이전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 “시민 의견 수렴 없는 이전 추진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구호로 채워졌다.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이 함께 외친 구호는 행사장을 가득 울렸다. 미리 연습하지 않았는데도 정확히 맞아떨어지자 시민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고, 회관 안은 뜨거운 결의와 훈훈한 울림으로 가득 찼다.

범시민대책위에는 여수시와 시의회,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여수시민협, 여수시민단체연대회의, 여수종고회, 언론 3개 단체, MBC 사우회, 한국예총 여수지회, 전남민예총 여수지회, 여수여해재단, 관광·복지·노동단체 등 각계가 망라됐다. 최근에는 한국노총 여수지부와 여수산단공동발전협의회도 참여를 선언해 연대의 폭은 더욱 넓어졌다.
행사 직후 박종길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이 자리가 가능했던 것도 백인숙 의장의 요청에 정기명 시장이 적극 나선 덕분”이라며 “시민 전체가 합심해 이전 반대를 외치는 만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도 시민 뜻을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전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기명 시장과 백인숙 의장의 발언처럼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이전 문제가 아니라, 노관규 순천시장이 지역 국회의원과의 대립을 넘어 전남 동부권 전체를 갈등의 장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는 것이다.

한편 같은 날 여수MBC는 본사 4층 대회의실에서 창사 55주년 기념식을 열고 자체 행사에 집중했다. 범시민대책위 출범식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내부적으로는 광고료 감소와 사옥 이전 문제를 포함한 지역방송의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했다.
이호인 대표이사는 “급변하는 방송환경 속에서 지역방송이 살아남는 길은 경쟁력 있는 뉴스와 콘텐츠 개발에 있다”며 “사원 모두가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념식에서는 장기 근속자와 방송 발전 유공 직원들에게 근속상과 면려상이 수여됐다.
결국 같은 날 같은 시간, 여수시민회관에서는 ‘이전 반대’의 구호가 울려 퍼졌고, 여수MBC 사옥 안에서는 ‘콘텐츠 혁신’의 다짐이 이어졌다. 갈라진 풍경만큼이나 시선도 달랐지만, 시민들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여수MBC는 결코 여수를 떠나서는 안 된다. 이 싸움은 여수만이 아닌 지역 전체의 정체성과 미래를 지키는 싸움이다.” /terryk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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