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이드칼럼] 한국의 '배달 산업 발전'에 꼭 필요한 것은?
[편집자주 :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문화·산업적 가치를 조명하는 '서울메이드 칼럼'을 연재합니다. 학계, 산업계 등 각계 전문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서울메이드'(SEOUL MADE)는 서울의 문화, 제조 등의 융복합적 가치를 아우르는 통합 브랜드입니다]
정동현·<셰프의 빨간 노트> 저자
서울은 인터넷 푸드 플랫폼의 도시. 하지만 그 혜택이 플랫폼 사업자에게 집중된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이같은 문제의 해결은 '서울 시민의 인간적 미덕'에 달려 있다고 한다면 순진한 주장일까?
새벽 6시,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순간 나는 옆집이 이사를 하는 줄 알았다. 그 집 현관 앞에 박스들이 내 가슴 높이까지 쌓여 있었던 것이다. 다시 그 박스 무더기를 살펴봤다. 박스에는 ‘새벽 배송’, ‘로켓 배송’ 같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스티로폼 박스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아 식재료나 음식이 담겨 있는 듯했다. 돌이켜보니 옆집 사람들이 따로 장 보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하긴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때때로 급하면 퇴근길에 동네 슈퍼에 들러 장을 보곤 했지만 대부분 회사 점심시간에 휴대폰으로 장을 봤다. ‘도대체 뭘 이렇게 많이 시키는 거야?’ 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니 새벽부터 분리배출 중인 경비원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 옆에는 키보다 더 높게 쌓인 하얀 스티로폼 탑이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밖에 나가는 일도 드물어졌다. 주말이 되면 넷플릭스로 시간을 때웠다. 회사에 가면 “이번 넷플릭스 신작 봤냐”는 이야기로 월요일 아침 인사를 대신 했다. 새벽에 본 풍경이 떠올라 동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요즘 장 어디서 봐요?”
“쿠팡이 제일 싸더덴요...”, “SSG가 믿을 만하던데요?”, “마켓컬리는 비싸서 가끔 사요.”
누구도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든가 재래시장을 간다든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막내는 이런 말을 했다. “직접 해먹기 귀찮아서 '배민'(배달의 민족)으로 시켜 먹어요. 요즘에는 삼겹살도 구워서 배달해줘요. 채소랑 밥도 주고요.”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배달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저희는 맛집이라 배달은 안 합니다”라고 말하던 사장들도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이제는 코스로 내놓는 음식 빼고는 거의 배달 오토바이 뒷자리에 실리는 신세가 된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식당 역시 인터넷 배달에 의존하고 있다. 영업 사원이 건네준 명함을 통해 식자재를 구입하던 시대는 갔다. 그들도 소비자처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식자재를 주문하고 받는다.
◆ 서울의 '밀집형 아파트 인프라'가 배달 문화 발전시켜
한국이 돋보이는 ‘배달의 민족’이 된 이유는 도시의 구조가 첫째로 꼽힌다. 도시 근교에 주거지가 펼쳐진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은 도시 한복판에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로 인해 얻는 이점 중 하나가 바로 편한 배달이다. 사람들이 도심에 밀집해 살고 있으니 배달 효율이 올라간다. 다른 나라와 달리 내가 직접 나가서 사 오는 비용보다 배달해 먹는 편이 더 싸게 먹히니 휴대폰 앱을 켜거나 전화를 돌린다. 한국은 마카오, 모나코, 홍콩 같은 도시 국가들을 제외하면 인구밀도가 거의 세계 톱이다. 그렇다 보니 택배 기사가 새벽 나절 30군데에서 50군데까지 배달을 돌 수 있다. 배달 원가가 싸진다는 뜻이다.
사회제도적 변화도 배달의 시대를 더욱 앞당겼다. 법정 근무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열었다. 대신 근무시간이 엄격히 관리되면서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짧아졌다. 점심시간에 느긋하게 방에 앉아 찌개 따위를 끓여 먹는 것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책상에 앉아 배달시킨 샐러드나 샌드위치로 점심을 가볍게 때운다.
퇴근 후 문화도 달라졌다. 퇴근하는 직장 동료를 붙잡고 도적 떼처럼 불판에 불을 피우고 삼겹살을 구워 먹던 것이 언제 적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요즘은 집에 일찍 들어가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게 대세다. 저출산에 집안 식구도 몇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런 집에서 뭔가를 해 먹는다면 식재료 원가가 사 먹는 것보다 더 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뜨는 것이 가정간편식과 배달 음식이다.
마지막 단추는 한국의 통신망이다. 압도적인 스마트폰 보급률과 빠른 통신망이 도시 구조, 사회제도와 엮여 1.5톤 트럭과 스쿠터가 도시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 소비자들은 이런 변화가 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공급자에게 와닿는 현실은 크게 다를 것이다.
◆ '인간적 미덕' 결합되면 배달산업 업그레이드될 것
‘인터넷 푸드 플랫폼’이란 것은 궁극적으로 정보의 빠르고 투명한 유통이 기반이 된다. 어떤 정치인이 ‘인터넷 때문에 맛집에만 사람이 몰린다’는 투의 발언을 해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맛집이 아닌 곳도 사람이 가야 장사해서 먹고산다’는 뜻이었다. 그 기사에 살벌한 댓글이 수없이 달렸지만 그 현상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숨겨진 맛집’이 존재했다. 다시 말하면 저평가된 식당이 있었다. 지금은 숨겨진 맛집이란 거의 없다. 전문가에게 정보를 의존해야 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누구나 맛집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이는 경쟁의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는 뜻도 된다. 정보를 얻은 사람들은 가까운 데 있는 보통 식당이 아니라 조금 멀더라도 더 나은 집으로 향한다. 중소 자영업자들이 약간의 친절과 편의성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도 한계에 쉽게 다다를 것이다. 마케팅 역량도 필수다.
대부분의 인터넷 플랫폼은 가입자가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배달의민족 앱을 켜면 바로 ‘오픈리스트, 울트라콜’ 같은 부제와 함께 배달업체가 나온다. 소비자가 제일 처음 보게 되는 업체 리스트인 셈이다. 광고비를 지급하면 순위가 오르는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영악해진 소비자들은 댓글과 평점을 더 주의 깊게 본다. 댓글과 평점을 관리하자면 지속적으로 ‘관리’가 필요하다. 평이 나쁜 댓글에는 사과 댓글을 단다. 그저 맛있으면 알아서 장사가 잘되는 낭만적인 시대는 안녕이다(있기는 했던가?).
물론 이렇게만 보면 늘 노력만 해야 하고 숨 쉴 틈 없는 전형적인 한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나쁘기만 한 미래는 아닐 것 같다. 대로변에 비싼 보증금과 권리금을 내야만 장사다운 장사를 할 수 있던 시대는 갔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은 물리적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게 해준다. 한국 특유의 분업화된 배달 시스템 덕에 꼭 누군가를 고용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비용과 함께 빠른 배송망을 이용할 수 있다. 소비자는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진다. 자연히 높아진 경쟁 덕에 소중한 가성비, 가심비를 두둑히 챙길 수 있다는 뜻이다.
최후에 필요한 것은 인터넷도, 5G 기술도 아닌 약간의 인간적인 미덕일 것이다. 치킨 한 마리 주문하면서 왜 배달비를 따로 받냐는 악플을 볼 때, 배달비가 너무 비싸다는 댓글에 달린 공감 수를 목격할 때, 택배 배송 비용이 10년 전과 같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첨단 기술과 앞선 사회제도도 결국 그것이 어떻게 쓰이느냐 하는 것은 그 사회 구성원의 인격, 혹은 도덕적 자질에 달렸다는 결론이 선다. 아무리 전파가 5G 속도로 공중을 갈라도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은 사람이고 문을 두들기며 음식을 건네는 것도 사람이다. 그 사실을 잊는다면, 아무리 인터넷 푸드 플랫폼으로 먹고살기가 편해져도 그리 아름다운 세상은 아닐 것이다.
[본 칼럼은 서울산업진흥원(SBA. 대표 장영승)이 발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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