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세탁공간도 없는 집…‘주거’를 생각해야 할 때
[서울경제TV=지혜진기자] 주거냐 투자냐. 집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
얼마 전 개포주공1단지 전용 49㎡를 분양받은 사람에게 제보를 받았다. 변변한 세탁공간조차 확보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외에도 제보자는 조합과 시공사가 자신이 들어가서 살게 될 아파트의 방치수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으며, 해당 아파트가 복도식이라는 것도 뒤늦게 인지했다고 이야기했다.
아파트 분양 시 방 치수를 알지 못하는 건 예삿일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분양 홈페이지에 치수를 제외한 평면도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평면도에 안내한 치수와 완공 후 치수가 달라서 문제가 생길 경우 면피를 위해서란다. 실제로 계획보다 발코니 치수가 좁게 나오는 바람에 세탁기를 설치할 수 없게 된 단지도 있다.
개포1단지 일반분양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했지만 책임을 지울 대상은 불명확하다. 시공사는 이미 입주자모집공고문에 해당 사항을 명시했고, 설계를 담당한 건 다른 업체다. 세탁공간이 미흡하고, 계단식보다 공사비가 저렴한 복도식 아파트를 짓는다는 이유로 조합을 막을 방도도 없다.
“10억원짜리 집에 세탁공간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
“시세차익이 얼만데, 집이 아니라 비싼 땅의 일부를 샀다고 생각해라”
개포1단지 일반분양자의 사연을 접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정반대의 주장이지만, 집값이 가치판단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선 같다. 둘 다 일리 있는 말이다. 주택시장은 상당 부분 투자시장화 됐고, 자산이라는 관점으로 집을 바라봐야 할 때도 많다.
하지만 집값과 무관하게 주거로서의 집이 중요한 때가 있다. 시장에 내놓은 집이라는 상품 안에서 사람이 일상을 영위하고 삶을 꾸려나갈 때가 그렇다.
‘몸테크’라는 조어까지 나온 시대다. 미래의 시세차익을 위해서라면 현재의 삶은 어느 정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씁쓸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이 비상식적인 설계가 용인되는 배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비사업의 불투명함, 불공정함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조합과 시공사의 짬짜미, 시공사의 공사비 부풀리기. 개발이익에 목숨 건 사람들, 법의 마지노선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들. 이 모든 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너무 만연해서 뻔한 소릴 되풀이하는 건 아닐지, 문제 제기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개포1단지 세탁기 논란은 ‘10억원짜리’라서 중요한 게 아니다. 이익과 효율의 관점에선 욕망의 정점인 ‘강남 아파트’조차도 비상식적으로 지어질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조합이 내분하는 사이, 시공사는 면피를 고민한다. 피해는 일반분양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이번엔 피해자가 아닐지라도 다음번은 장담할 수 없다. ‘강남불패’도 예외는 없다.
시공사들이 으레 내세우는 ‘주거 명작’이라는 수사가 빛을 발해야 하는 때다. /hey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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