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팝업의 성지, 성수동의 그늘] ⓶디올성수에 밀려나는 자영업

경제·산업 입력 2024-07-20 09:00:00 수정 2024-07-20 09:00:00 이수빈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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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임대료 고공행진…어김없이 젠트리피케이션 닥쳐
팝업스토어 '임대차 보호법' 적용 예외…건물주 팝업만 선호
성동구 "임대료 안정화 노력"… 제도 개선 없이는 한계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 이용객들이 대기줄에 서 있다.

#성수역에서 발걸음을 옮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벗겨진 방청 페인트와 붉은 벽돌 건물, 그리고 녹슬어버린 철근.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형형색색으로 꾸며놓은 각종 브랜드들의 팝업스토어가 절묘하게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놀이터라 불렸던 각종 브랜드의 팝업스토어가 여러 문제를 일으키며 성수동 화려함 뒤로 그늘이 지고 있다. 성수동 팝업스토어의 이면을 2회에 걸쳐 들여다 본다.
 

◇매주 진행되는 팝업스토어만 평균 50여개

성수동 연무장길의 풍경은 사뭇 독특하다. 이곳을 오래 지킨듯한 자동차 정비소들이 군데군데 자리한 반면, 당장 어제 생긴 듯한 세련된 카페와 가게들이 바로 그 옆을 메꾸고 있다. 그 때문에 정비소의 매캐한 공기와 젊은 사람들의 북적이는 소음이 거리 속에서 뒤섞인다. 그중 알록달록 꾸며진 어떤 가게들 앞에는 더위에 양산까지 챙겨 쓰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단 몇 분만 걸어도 이마에 땀이 흐르는 날씨. 하지만 뜨거운 땡볕 아래서도 팝업스토어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더 불어난다. 일명 팝업스토어 체험족들이다. 두 줄로 길게 늘어서 마치 검사 차례를 기다리듯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조선시대 병사들이 무예 실력을 검사 받던 곳이라는 연무장길 이름의 유래가 문득 떠오른다.

 

성수동의 이러한 독특한 풍경은 팝업스토어 열풍이 불면서 시작됐다. 임시 단기 매장을 의미하는 팝업스토어는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홍보할 때 공간을 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대개 일주일 정도 진행되고 다시 다른 팝업스토어로 바뀌는 게 일반적이며 길어도 한달, 짧은 경우 반나절만에 사라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여의도 등 서울 내 다른 지역에도 팝업스토어가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성수동 없이 팝업스토어를 논할 수는 없다. 매주 성수동에 열려 있는 팝업스토어 수만 50여개로, 성수동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팝업스토어가 운영되는 지역이다. 패션이나 뷰티 브랜드 위주로 열풍이 불기 시작했지만 점차 그 영역이 넓어져, 식품과 금융에 이르기까지 참여 기업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번화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던 성수동이 서울 내 가장 트렌디한 ‘핫플레이스’가 됐다.
 

본래 기계 관련 업체가 있었던 연무장길의 한 건물. 기계 업체 간판이 지워진 곳에 '썸머 팝업'이라는 글씨가 그려졌다. 

 


◇100평 상가 임대료 월 2,200만원선…5년만에 두배 올라

하지만 이곳이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본래 성수동에 있던 상인들은 위기에 처했다. 기존 상인들이 임대료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상황에 놓인 것이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를 통해 올해 1분기 성수동의 월평균 임대료를 살펴보면, 성수동 메인 거리와 인접한 성수1가2동의 경우 3.3㎡당 218,917원, 성수2가3동이 195,702원이다. 예를 들어 현재 성수1가2동에 50평 정도의 상가를 임대한다면 약 1,100만원을, 100평 상가를 임대하면 약 2,200만원을 월세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1년 전 임대료가 평당 17만원대를 웃돌았던 것을 고려하면 임대료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또, 2018년에는 약 10만원이었다는 점을 보면 5-6년 만에 임대료가 두 배 가량 상승한 것이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임대료 상승에 팝업스토어 열풍 이전부터 성수동에서 영업을 해온 상인들은 이곳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실제로 성수동 연무장길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이씨는 팝업스토어 열풍으로 인해 성수동 임대료가 증가하면서 가게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씨는 2019년부터 이곳에서 매장을 운영하며 성수동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제가 들어온 2019년에는 스타벅스도, 디올성수도 없었죠. 제가 있는 서 연무장길 쪽에는 기사식당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낮에도 공사하시는 인부들만 지나갔고 지금 같은 아기자기한 개인카페도 없었고요. 성수동을 대표하는 지금의 무신사 건물은 재건축 전 건물로 경매딱지가 붙어있던 빈 건물이었습니다.“

그는 6년 사이 연무장길의 임대료 상승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메인 거리의 경우 6년 전보다 적어도 5배 이상은 임대료가 올랐다”며 “임대료가 오르면서 기존에 있던 자영업자분들은 다른 지역으로 많이 이동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기존 상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합리한 일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이씨는 “제대로 된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건물주의 압박을 받아 쫓겨나신 오래된 자영업자분들도 많이 생겼다”며 “적은 권리금을 받고 나가게 유도하거나, 영업을 할 수 없게 임차인에게 시비를 걸며 결국 정신적으로 괴롭혀 쫓아낸 건물주도 있다, 또 권리금을 중간에 가로채는 부동산들도 생겼다”고 밝혔다.

 

◇고수익 팝업스토어…건물주, 기존 상인들 내보내

이처럼 건물주들이 임대료 상승에 그치지 않고 기존 임차인들을 내보내려고 하는 이유는 정식 임대보다 팝업스토어 임대 수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팝업스토어 임대의 경우 대부분 단기임대로 이루어지고 대기업 중심의 대규모 자본을 상대로 계약이 진행되기 때문에 단기간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또 팝업스토어는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팝업스토어의 경우 단기로 운영되기 때문에 임대료 증액 상한을 5%로 제한하는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즉 임대료 인상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성수동 팝업전문상가인 'XYZ SEOUL'에서 빈티지 의류 팝업스토어가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팝업스토어 임대의 장점이 많다보니 정식 임대는 받지 않고 팝업 임대만 받는 상가도 늘고 있다. 실제로 성수동에서 가장 큰 규모의 팝업 상가 중 한 곳인 ‘XYZ SEOUL’은 본래 택배회사가 있던 자리였으나 현재는 팝업 전문 상가가 됐다. 정식 임대는 아예 받지 않고, 팝업 임대가 없을 때는 공실로 남겨둔다. 성수동을 지나다니다보면 메인거리에서도 공실을 종종 발견하게 되는 이유다. 

성수동의 부동산 외벽 광고물. '팝업스토어 대관'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부동산들도 모두 ‘팝업’을 내세운다. 성수동에 위치한 부동산 외벽에서는 ‘팝업 컨설팅’. ‘팝업대관’ 등의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반 상가 임대 광고의 경우에도 ‘유명 팝업 인근’ 등 팝업스토어에 관한 문구가 자주 보인다. 부동산 외에도 팝업매장 행사물이나 포스터, 현수막 등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가게도 등장하고 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 텅 빈 채 존망 위기를 맞고 있다. 

 

◇과거 명성 ‘수제화 거리'도 존망 위기 맞아

이 때문에 성수동에서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던 ‘수제화 거리’도 존망 위기를 맞았다. 성수동 임대료가 치솟기 시작한 후 수제화 거리의 장인들은 대부분 이곳을 떠나 현재는 30% 정도만 성수동을 지키고 있다. 22년째 성수동에서 수제화를 만들고 있는 유홍식 명장은 “20년 전과 비교하면 성수동은 천지개벽했다”며 “현재는 성수동 상권 변화로 인해 20-30년 이상 수제화를 만들어온 장인들이 모여 있는 수제화 거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유홍식 명장은 젊은 사람들만 지나다니는 곳을 피해 성수역 근처로 가게를 옮겼지만 임대료 상승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가 수제화점을 영업 중인 가게의 월세는 13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랐다. 그는 “임대료가 너무 올라 구두를 만들어서는 월세를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팝업스토어들이 들어오면서 젊은 사람들의 유입은 늘었지만 단골 위주의 영업을 하는 수제화 거리에는 임대료만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성동구 역시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동구는 지난 6월 팝업스토어 관련 사항을 규정한 ‘성동형 팝업 매뉴얼’을 공개하면서 팝업스토어 사용료를 공개해 상권 임대차 관련 가격 안정화를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구 차원에서 팝업 중개 플랫폼 측에 사용료를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팝업 매뉴얼 홍보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자체 차원 젠트리피케이션 논의 한계 많아

그러나 제도적 차원에서의 논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단기 임대인 팝업스토어는 현재 별도의 신고 혹은 허가 의무가 없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등 적절한 제도의 테두리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성동구청은 이에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상위기관에 건의해 법적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팝업스토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지난 6월 20일 성동구청 팝업스토어 대책회의에서 성동형 팝업 매뉴얼을 공개하며 "성수동 팝업스토어 활성화에 따라 발생되는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지역공동체가 상생하는 생태계가 조성되길 바란다”며 “성수동뿐만 아니라 성동구 전역이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더욱 세심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당장 다음 달의 영업을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제도의 보호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유홍식 명장은 “30년 넘게 수제화를 만들며 성수동을 알렸지만 지자체나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이나 지원은 전혀 없다”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수제화 거리가 아예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이씨 역시 “성수동 거리 자체가 기존의 개성보다는 대기업 중심의 상업적인 느낌이 짙어졌다”며 “꽤 개성 있었던 카페나 샵들은 이미 빠른 속도로 성수동을 떠나고 있다”고 밝혔다./글·사진 이수빈 인턴기자 q00006@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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