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 부른 다이어트 약...그 실체는?
경제·산업
입력 2025-01-17 13:40:14
수정 2025-01-17 13:40:14
유여온 기자
0개
마약류 식욕억제제 총 76품목
식약처 가이드라인 유명무실
[서울경제TV=유여온 인턴기자] 식욕억제제를 잘 처방해준다는 이른바 ‘다이어트 성지’ 병원. 요즘 이 병원은 '오픈런'하는 환자들로 북적인다. 단기간 체중감량에 성공했다는 입소문을 타고 SNS, 커뮤니티 등에 후기가 공유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진료 시작도 전에 건물 복도는 대기표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새벽부터 매트를 가져와 쪽잠을 자는 이들, 줄서기 대행 업체를 부른 이들도 있었다.
◇ 식욕억제제 오남용 심각…계속 증가세 보여
해당 병원 전문의는 ‘마약류 오남용 방지를 위한 조치 기준’과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기준’을 벗어나 과다 처방한 혐의로 두 차례 경찰에 입건된 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병원은 성업 중이었다.
다이어트 효과라는 미명 아래 처방된 약 중에는 향정신성의약품, 즉 마약류도 섞여있었다. 의료용 마약류의 경우 식약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적당량을 복용하면 큰 부작용 없이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자의적 판단으로 오남용하게 되면 불안·마약 중독·환각 등의 부작용을 겪게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마약류 식욕억제제 부작용 보고 건수는 2.1배 증가했다.
◇ 식약처 가이드라인 유명무실…초과 처방도 의사 고유권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0년 8월 마련한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 사용 기준'에 따르면,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4주 이내의 단기처방이 기본으로, 의사 판단에 따라 추가 처방은 가능하지만 부작용 위험을 고려해 총 처방 기간은 3개월을 넘기지 않도록 규정했다. 1일 권장 투여량은 1~3정이다. 그러나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5년간 연평균 2만3,000여 명의 환자가 3개월을 초과해 처방받은 것이 드러났다.
◇ 마약류 식욕억제제 총 76품목…알려지지 않은 부작용
마약류 식욕억제제란, 펜터민·펜디메트라진·디에틸프로피온·토피라메이트 등의 성분이 포함된 의약품으로 국내에는 총 76품목이 이에 해당된다. 일명 ‘나비약’이라고 불리는 ‘펜터민’은 다른 약에 비해 저렴하고 효과가 좋아 가장 많이 사용된다.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암암리에 거래될 정도로 널리 퍼져있지만, 장기 복용 시 위험성이 크다. ‘중추신경계 흥분제’이기 때문에 환각 증세를 보일 위험이 있어 3개월 이상 복용하면 안된다. 펜디메트라진은 펜터민과 약효가 거의 유사하다.
디에틸프로피온은 중추신경계에서 교감신경과 유사한 작용을 통해 식욕을 억제하는 성분으로 필로폰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어 중독 위험이 크다. 토피라메이트는 본래 간질 치료에 사용하는 항간질제다. 뇌전증 환자가 치료를 위해 토피라메이트를 오래 복용하면 체중이 줄어드는 것이 관찰되었으나, 비만치료제로는 허가받지 못한 약품이다.
◇ 의료용 마약류 관련 제도의 실효성 의문
정부는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방지를 위해 각종 예방책을 내놓았지만, 이마저도 허점이 존재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운영하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는 의·약사가 환자의 투약 내역을 토대로 의약품을 처방해도 괜찮은지를 안내하는 프로그램이다. DUR 시스템이 해당 환자의 경우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음에도 처방을 해야 할 경우엔 의·약사가 사유를 적어야 한다. 제출된 사유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현행법상 DUR 시스템 점검은 의무사항이 아니라, 실질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식약처가 내놓은 ‘의료용 마약류 투약내역 확인 제도’는 의사가 처방단계에서 환자의 과거 의료용 마약류 투약내역을 자동으로 확인하고, 중복 처방이 우려되면 처방을 거부할 수 있는 제도다. 지난 2024년 6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됐지만, 확인 대상이 펜타닐 성분의 정제와 패치제에 한정되며, 처방 재량을 여전히 의사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오남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식약처의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NIMS)의 경우엔, 모든 처방 내역이 실시간으로 보고되도록 하고 있다. NIMS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마약류관리자가 없는 중소형 병원에서는 마약류 처방량이 관리자가 있는 병원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이 드러났다. 마약류관리자가 없는 병의원의 경우 사각지대로 남아 오남용으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였다.
이렇듯 의료용 마약류가 가진 위험성에 비해 환자가 중독을 예방하고, 인지할 수 있는 시스템은 미비한 실정이다. 2023년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은 국민은 무려 1991만 명에 달한다. 소비자(환자)가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을 정확히 인식하고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한 법률 전문가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정책들은 법망이 촘촘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방지하기엔 무리가 있다"면서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소규모 의원급 의료기관에도 처방량에 따라 약사 마약관리자를 두도록 의무화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내놓았다. 반면 의료계에선 이 개정안을 두고 "사실상 의사들의 관리역량을 믿지 못한다는 전제 하에 만들어진 법"이라며 "이는 향후 의사에 대한 불신을 더욱 조장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yeo-on0310@sedaily.com
[ⓒ 서울경제TV(www.sentv.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 [위클리비즈] ‘오징어 게임’ 처럼…“줄다리기 한판 하실까요?”
- 고려아연 주총 D-6…'캐스팅 보트' 국민연금 손은?
- 현대차그룹, 印 공략 박차…기아 ‘시로스’ 양산 개시
- 유통업계, 물류 인프라 투자…“당일배송 강화”
- 한수원-美 웨스팅하우스 지재권 분쟁 종료…체코 원전 '청신호'
- "고객에게 더 가까이"…볼보트럭코리아, ‘원스톱 서비스’ 강화
- LG화학, 최대 6,000억 원 회사채 발행
- 서울시 '하이서울기업', 경제 위기 속에서도 성과
- 네이버, 생물다양성 보전 위해 한국생태학회와 협력
- 롯데마트 오픈한 ‘강동 이스턴 스퀘어’ 방문객 활기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