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 뒤집힌 ‘컵 보증금제’…일관성 없는 친환경 정책
경제·산업
입력 2025-12-03 07:00:04
수정 2025-12-03 07:00:04
이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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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정부가 바꾼 정책…컵 보증금제, 사실상 폐지 수순
“앱 깔고 반납처 찾아다녀야”…현장은 ‘피로감’ 호소
독일·핀란드는 90%대 회수율…성패 가른 정책일관성·인프라
“실패 전례 있었음에도 세심하지 못해…소비자·자영업자 혼란 가중”
[서울경제TV=이채우 인턴기자] 컵 보증금제가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전국 확대를 추진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소상공인 부담을 이유로 시행을 연기했고, 이번 이재명 정부는 아예 전국 시행 계획을 철회하고 자율 시행 체계로의 전환을 추진하면서 사실상 제도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컵 보증금제는 과학적으로는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는 제도였지만, 제주와 세종에서의 시범 운영은 정책의 잦은 변경과 회수·세척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기대한 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독일·핀란드 등에서 90%대 회수율을 기록하며 성공한 보증금제와 달리, 국내에서는 정책-산업-소비자 간 조율 부재로 소비자와 자영업자의 현장 혼란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세 정부가 바꾼 정책…컵 보증금제, 사실상 폐지 수순
컵 보증금제는 크게 일회용컵 보증금제와 다회용컵 보증금제로 운영된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소비자가 커피나 음료를 일회용 플라스틱컵이나 종이컵에 담긴 음료를 구매할 때 300원의 보증금을 지불하고 컵을 반납하면 돌려받는 제도다. 다회용컵 보증금제는 소비자가 단단한 PP소재의 다회용 컵에 음료를 제공받고 1000원의 보증금을 함께 결제하면 이후 무인회수기에 컵 반납 시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2002년 처음 도입됐지만 37%의 낮은 회수율, 미반환 보증금 문제 등으로 2008년 폐지됐다. 이후 2020년 도입이 결정되고 두 차례 시행 연기 끝에 2022년 세종시와 제주도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2023년 9월, 시범 운영이 시작된 지 1년도 지나기 전에 환경부는 “현재 국회에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지자체 여건에 맞게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내용의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고 밝히며 전국 확대에서 한발 물러섰다.
2025년 11월 정부는 전국 의무화를 포기하고, 각 지자체가 선택적으로 시행하도록 ‘지자체 자율 시행’ 방침을 공식화했다. 그 결과 전국 확대 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됐고,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사실상 폐지 수순에 접어들었다.
세종과 제주에서의 컵 반환율 역시 환경부의 결정 이후 급격히 떨어졌다. 두 지역에서의 컵 반환율은 2022년 12월 11.9%에서 2023년 11월 78.4%까지 상승했으나, 2024년 6월에는 44.3%로 급락했다. 매장 참여율 역시 2022년 세종 64.9%, 제주 94.6%에서 2024년 각각 31.3%, 44.8%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2025년 11월, 현재 제주도에서는 도 자체적으로 일회용컵 5개당 종량제 봉투 1장 등 인센티브를 부여해 제도를 이어가고 있다. 제주도는 “2026년에도 일회용컵 보증금제 안착을 위해 소비자 인센티브를 실시하고, 참여 매장에 대한 지원책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앱 깔고 반납처 찾아다녀야”…현장은 ‘피로감’ 호소
2021년 제주도는 환경부·한국공항공사·스타벅스·SK텔레콤 등과 협약을 맺고 도내 스타벅스 매장 등에서 1000원의 보증금을 함께 결제하고 일회용컵이 아닌 다회용컵에 음료를 받는 ‘다회용컵 보증금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2022년 12월 제주·세종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범 운영이 시작되기 전, 제주도는 자체적으로 민간과의 협약을 통해 제도를 먼저 도입한 것.하지만 몇 년간 이뤄진 잦은 정책 변경의 부담은 결국 소비자와 자영업자가 떠안아야 했다.
제주도민 김모 씨(24)는 “오락가락하는 정책 때문에 정신이 없다”며 잦은 정책 변경에 불만을 드러냈다.
김 씨는 “어르신들은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으시는데, 정책까지 자꾸 바뀌니 더 혼란스러워하셨다”며 “관광 렌트카에서 나오는 매연 등이 환경오염이 더 심각할텐데 비교적 사소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에서 정책을 자꾸 변경하는 건 큰 피로감을 느낀다”며 지적했다.
제주도를 매년 찾는 관광객 변모 씨(26)도 “제주도는 다회용컵인지 일회용컵인지 올 때마다 환경 정책이 바뀌는 느낌”이라며 “또 컵은 홀더·뚜껑·빨대를 모두 제거하고 세척한 상태여야 하는데, 상태가 깨끗했음에도 반납 기계가 부적합으로 계속 거부해 불편했다”고 말했다.
이어 “네이버·카카오 지도에서는 반납함 위치가 확인되지 않고 ‘자원순환보증금’ 앱에서만 조회 가능한 점도 아쉬웠다”며 “반납함 자체도 많지 않아 300원을 돌려받으려고 여행 중 반납함을 일부러 찾아가야 해서 번거로웠다”고 전했다.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 역시 제도 설계가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반발하며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환경부가 보증금제 적용 대상을 ‘가맹 매장 100개 이상인 프랜차이즈’로 한정한 탓에 무인카페나 소규모 개인 카페, 지역 브랜드 등은 제도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그 결과 프랜차이즈 가맹업주들은 “왜 규모가 작은 카페나 무인카페는 빠지느냐”며 “지갑 사정이 어려운 소비자들이 사실상 300원이 인상된 커피·음료 판매 업소를 외면할 것이 불 보듯 뻔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 독일·핀란드는 90%대 회수율…성패 가른 정책일관성·인프라
다회용컵·일회용컵 보증금제 같은 이른바 ‘친환경 규제’는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다. 정밀한 인프라 구축, 순환 시스템 확보, 소비자 경험 설계가 뒷받침 된다면 정책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발표한 동아시아 LCA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기존 일회용컵을 재사용 가능한 컵 시스템으로 전환할 경우 연간 약 2억5000만 kg의 탄소 배출이 감소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9만2000대 이상의 내연 기관 자동차가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과 같으며, 180만㎥ 이상의 물과 100만 배럴 이상의 석유를 절약할 수 있는 수치다.
실제 정교한 인프라를 구축한 다른 나라의 경우 성공적 효과를 거뒀다. 독일의 경우 2003년부터 ‘Pfand 제도’라는 보증금제도를 운영중이다. 독일은 대부분의 슈퍼마켓이나 음료 매장에 보증금 반환기가 마련되어 있으며, 소비자는 일회용 페트병이나 병을 반환한 후 받은 영수증을 매장에서 현금처럼 사용하거나 실제 현금으로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이 제도 도입 후 현재 독일의 페트병 회수율은 93.5%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핀란드 역시 ‘PALPA’라는 이름의 음료용기 보증금 시스템을 바탕으로 전국 단위 회수·재활용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산업계와 유통사가 공동 운영한 결과 핀란드의 페트병 회수율은 약 92%, 캔과 유리병은 99~10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해외 사례와는 달리, 국내에서 시행된 컵보증금제는 구조적으로 같은 효과를 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정책의 일관성, 회수·세척 인프라라는 핵심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
◇ “실패 전례 있었음에도 세심하지 못해…소비자·자영업자 혼란 가중”
2023년 9월 환경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사실상 철회하면서 시범사업으로 쌓였던 동력은 빠르게 약해졌다. 의무화가 전제될 때에는 ‘정부의 정책’이라며 소비자 설득이 수월했지만, 정책 방향이 흔들리자 매장과 소비자의 참여 의지도 약해진 것.
제주도 내 시범 사업을 맡아온 사회적기업 행복커넥트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가 떨어지자 소비자에게 권유하기 어려워졌다”며 2024년 5월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같은 정책을 2003년 시행하다 5년 후 폐지했던 전례가 있었음에도 제도 정착을 위해 설득하고, 부담을 덜어주고, 컵 반납과 회수가 쉽도록 인프라를 조성하는 세심한 준비가 부족했다”며 “해외에서는 보증금제가 재활용률을 높이는 대표적 정책으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에서는 잦은 제도 변경과 인프라 부재로 소비자와 자영업자의 혼란을 가중시켰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dlcodn1226@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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