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집 예약부터 결혼전 난소검사까지...불확실성이 부른 '레디코어'

경제·산업 입력 2025-12-17 07:00:10 수정 2025-12-17 07:00:10 이채우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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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도 두 달 전 예약”…일상 전반으로 퍼진 '레디코어' 트렌드
2030이 주도한 레디코어…검진·노후·재테크까지 앞당겨
"이유는 불확실성"…기업, 단순 판매 넘어 인생 파트너로

한 유명 횟집은 현장 웨이팅 없이 오직 예약제로만 운영된다. 금·토는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이미 3주 전부터 예약이 전부 차있다. 이른바 ‘황금 시간대로 불리는 ’오후 5시부터 8시 사이의 저녁 시간대는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두 달 전부터 예약이 마감됐다. [사진=캐치테이블 캡처]


[서울경제TV=이채우 인턴기자] “아무리 겨울철 방어가 인기라지만 예약이 이렇게까지 필요한가요?” 

최근 방어를 먹으러 간 A씨는 예약 없이 횟집을 찾았다가 곧바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알고 보니 그곳은 현장 웨이팅을 받지 않고 오직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곳이었기 때문. 직원은 “금요일, 토요일은 낮 3시부터 밤 11시까지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3주 전부터 전부 예약이 마감됐고, 이른바 ‘황금 시간대’인 오후 5시부터 8시 사이의 저녁 시간대는 평일·주말 가리지 않고 두 달 전부터 예약이 꽉 찬다”고 설명했다. 

프로야구 티켓, 크리스마스 케이크, 편의점 신상 사전 예약까지. 요즘 소비자들은 일상을 둘러싼 거의 모든 선택지를 ‘미리 잡아두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결혼 전 산전검사 등 인생의 큰 이벤트까지 사전에 준비하는 흐름이 일상화되는 모습이다.

기업들 역시 상조·보험·유통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전 설계형 상품과 생애주기 서비스를 강화하며 이런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커진 사회에서 미래를 통제하려는 욕구가 커지면서, 삶을 미리 설계하는 ‘레디코어’가 주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 폭증한 캐치테이블 이용…미리 계획하는 소비 주류로

지난 9월 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26'에 따르면 2026년 키워드 중 하나로 ‘레디코어’가 선정됐다. 

레디코어는 준비(ready)와 핵심(core)을 합친 단어로,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핵심 역량과 가치를 준비하려는 경향을 뜻한다. ‘코어’란 어떤 취향·무드·스타일을 하나의 세계관처럼 묶어 부르는 단어로 패션, 소비 방식, 이미지 분위기까지 포함해 핵심 정체성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용어다. 레디코어는 특히 2030의 젊은 세대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응원하는 관중들. [사진=뉴스1]


◇ "선점 위해서는 준비가 필수"…모든 선택 발빠르게 ‘레디’

실제로 레디코어 흐름은 이미 사회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첫 1000만 관중을 돌파하며 흥행가도를 내달렸던 프로야구 예매는 이미 온라인 예매가 활성화돼 잔여 좌석을 당일에 구매할 수 있는 현장 예매는 먼 이야기가 됐다. 최근에는 유료 회원을 대상으로 일부 구단에서 ‘선예매’를 넘어 ‘선선예매’, 심지어 ‘선선선예매’를 도입해 좋은 좌석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싶은 팬들은 시간 단위로 쪼개진 예약 시간대를 선점해야 한다.  

크리스마스 당일 식당 예약 역시 마찬가지다. 인기 레스토랑들은 12월이 되기도 전에 예약창을 연다. 올해 캐치테이블은 2025 크리스마스 식당 예약을 6주 전인 11월 10일 오픈했다. 흑백요리사 등 유명 프로그램에 출연한 일부 식당들은 예약이 1분 만에 마감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식당 선점하기는 연중내내 지속되는 현상이다. 캐치테이블의 순 이용자수는 2025년 4~7월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상승했다. 특히 6월 1주차에는 67만 명을 돌파해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성장했다. 소비자들이 성공적인 경험을 누리기 위해 각종 앱을 활용하기 시작하자 예약 관련 플랫폼들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가을마다 열리는 서울 세계불꽃축제는 일명 명당으로 알려진 인근 호텔들이 발빠르게 예약되고, 빅3 백화점 크리스마스 마켓 역시 사전 예약을 기본으로 진행한다. 


2025 스타벅스 크리스마스 홀케이크 사전예약 라인업. [사진=스타벅스]


이제 유통업계에서도 레디코어 트렌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CU·GS25·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업계는 신제품을 출시할 때 사전예약 판매를 기본으로 내건다. 특히 지난달 GS25가 가수 지드래곤과 협업한 ‘데이지에일’은 사전예약 시작 1분 만에 완판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카페 업계가 선보이는 크리스마스 시즌 케이크 사전 예약 역시 매년 치열하다. 스타벅스는 지난달 14일부터 사전 예약 주문을 시작한 조선호텔 협업 크리스마스 홀케이크 6종이 모두 예약 마감 상태라고 전했다. 폴바셋과 할리스는 지난달 28일부터, 투썸플레이스는 지난달 19일부터 사전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폴바셋 관계자는 "사전 예약 주문이 작년보다 약 1.7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인 이지혜 씨가 한 예능에 출연해 2017년 초반 결혼 전 미리 난자를 냉동한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 [사진='몸의 대화' 유튜브 캡처]


◇ "결혼 전 임신부터 준비해요"…일상 넘어 삶 전반에 적용되는 '레디코어'
 
사실 이러한 예약 문화는 우리에게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명 맛집을 가거나 페스티벌·공연 등을 즐기기 위해서 사전에 일정을 확보하고 예약을 하는 문화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간단한 일상 선택을 넘어 삶 전반을 준비하는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레디코어 세대 사이에서는 결혼·육아·노후 같은 인생의 주요 이벤트를 위한 준비가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최근 2030 여성들 사이에서는 결혼 전 산전검사와 난소나이 검사가 화제다. 유명 유튜버들과 연예인들이 검사를 받는 모습이 미디어를 공개되며 화제를 모았고,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결혼과 출산 시점을 앞당기거나 난자 냉동을 결정하고 있다. 

청년들의 노후 자금 준비 역시 빨라지는 추세다. 청년들은 취직 직후 연금저축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 같은 장기 금융상품 투자하며 은퇴 후 미래를 설계한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IRP 가입자의 2022년 대비 증가율은 20대가 201%로 가장 높았고, 이어 10대(140%), 30대(76%) 순이었다.
은퇴 생활을 대비하는 연금저축펀드 역시 같은 기간 10대가 253%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고, 30대는 71%로 뒤를 이었다. 노후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조기 노후 준비가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이 지난 8월 1일 선보인 비대면 상속설계 체험 서비스 '나만의 상속노트'. 유언대용신탁 등 실제 고객의 상황에 맞춘 금융상품까지 제안하며 맞춤형 자산관리를 지원한다. [사진=KB국민은행]

 

◇ "이유는 불확실성"…기업, 단순 판매 넘어 인생 파트너로

소비자들이 일상을 미리 계획하는 흐름이 커지면서, 기업들도 단순 판매를 넘어 생활 전체를 함께 챙기는 서비스로 방향을 넓히고 있다. 

최근 상조업계는 장례를 중심으로 하던 기존 모델에서 벗어나 생애주기 서비스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보람상조는 웨딩 컨설팅, 해외 골프여행, 반려동물 장례·추모 서비스 등을 제공해 상조를 ‘생애 이벤트 관리 서비스’로 재정의하고 있다. 

금융업계 회사 역시 레디코어 세대의 계획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소비자가 직접 상속 시나리오를 미리 구성해보며 준비하는 ‘비대면 상속설계 체험 서비스’를 선보였다. 총자산과 가족 구성, 희망 배분 비율 등을 입력하면 맞춤형 상속 설계안을 확인하고, 예상 상속세 규모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에서 레디코어의 배경에 ‘불확실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일명 ‘제로성장’의 위기에 직면한 현 시점에서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는 것. 지난 7월 말, IMF와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잇따라 하향 조정하며 사실상 0%대 성장률을 기정사실화했다.  

또 여기에 AI를 비롯한 기술변화의 격화가 더해지며 스스로의 실존에 대한 의문이 커지며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통제 욕구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기업은 단지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계획을 지원하는 인생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며 “이제 기업은 단발적인 거래가 아닌 소비자의 여정 전체를 아울러 함께 준비하고 성장하는 장기적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고 밝혔다. /
dlcodn1226@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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