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 고질병 "혼용률 오기재"…왜 매년 되풀이되나
경제·산업
입력 2025-12-17 07:00:04
수정 2025-12-17 07:00:04
오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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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다운 등 충전재 값 오르면서 덕다운 혼용 계속돼
무신사 등 의류 유통 플랫폼도 전수 검사 기피
'삼진아웃제' 등 입점 업체에 관대한 규정도 문제
"업계에선 다들 쉬쉬 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젠 그러기 힘들죠. 소비자들도 많이 똑똑해졌거든요"
패딩 혼용률 오기재 논란이 또다시 패션업계를 흔들고 있다. 브랜드 규모와 상관없이 유사한 사례가 이어지며 업계 전반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다. 원자재 가격 상승, OEM 구조, 검수 부재 등 여러 요인이 꼽히지만 소비자를 이해시키기엔 한참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년째 되풀이되는 '혼용률 오기재' 논란, 업계 전반에 깊어진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플랫폼 측의 강도 높은 규제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 “혼용률 논란, 또 반복”…도메스틱부터 대기업까지 확산
패딩 충전재 혼용률 오기재 문제가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2030세대에게 인기 있는 남성 컨템포러리 브랜드 ‘해칭룸’ 역시 지난 4월 특정 패딩 제품의 충전재 표기가 실제와 다르다는 지적을 받았다. ‘HEAVY WEB GOOSE DOWN PUFFER’ 제품이 구스다운을 표기했지만 실제로는 덕다운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혼용률 오기재는 중소 브랜드와 대기업을 가리지 않고 적발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다수 브랜드가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서 제재를 받았고, 작년 이랜드 산하 브랜드 후아유는 거위털 함량 기준 미달 제품을 판매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어 지난 6일, 노스페이스는 충전재 혼용률 오류 제품 13개를 발표하고 사과했다.
문제는 2019년 한국소비자원이 롱패딩 10개 브랜드를 조사해 일부 제품의 혼용률 표기 오류를 적발한 것을 시작으로, 7년째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조사에서도 특정 부위에 합성섬유를 섞어 사용하고도 정확한 비율을 표기하지 않은 사례가 적발됐다.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구조, 브랜드별 검수 시스템 부재 등이 원인으로 분석되지만, 업계는 원자재 가격 급등을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가공되는 화이트 구스 소재 가격은 2023년 3월 1kg당 약 110달러에서 2024년 8월 약 140달러로 상승했다. 그레이 구스 다운 90%와 80%의 가격도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국내 패션업계 80% 이상이 중국에서 수입해 물량이 생산된다고 전해지는 만큼, 중국내 가격 오름세의 여파를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다운 생산 업체 CEO는 “온라인 가격 경쟁이 심해지면서, 가격을 올릴 수 없으니 원가 절감을 위해 충전재를 혼용하고 이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기업들이 비용을 이유로 소비자를 기만한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엔 업계 내 관행처럼 쉬쉬하며 넘어갔던 부분이지만 최근엔 소비자 감수성이 달라져 더는 업체들이 얼렁뚱땅 넘어가긴 어렵다”라고 말했다.
◇ 무신사 중심으로 성장한 패션업계…검수 체계는 여전히 '갈길 멀어'
무신사는 월간 이용자 수 640만명, 입점 브랜드 8500개에 달하는 국내 최대 패션 플랫폼이다. 중소 도메스틱 브랜드는 물론 대기업 산하 브랜드까지 입점하며 몸집을 키웠지만, 플랫폼의 검수 구조는 여전히 브랜드 자율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무신사는 패딩 충전재 논란 이후 플랫폼 내 등록된 약 7968개 상품을 전수 조사했다고 지난 2월 밝혔다. 브랜드들에게 공신력 있는 시험성적서 제출을 의무화했지만, 플랫폼 자체의 이중 검수는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브랜드가 제출한 자료의 진위 여부를 가려낼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실제로 지난해 퇴점된 라퍼지스토어는 고객에게 판매된 제품과 상이한 시험성적서를 제출해 논란을 빚었다. 브랜드가 자료를 조작할 경우 플랫폼은 자체 검수를 진행하지 않는 이상 이를 걸러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외부 기관이 참여하는 구조적 검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은희 교수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검수를 맡는 방식으로 신뢰도를 높여야 하며, 내부 직원만으로 검증하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무신사 측은 “통신판매중개업 특성상 사전 검수는 어렵다”라며 “KATRI와의 MOU를 통해 브랜드·소비자 보호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소비자 신뢰 회복이 급선무…'1 Strike Out' 등 규제 강화 목소리도
전문가 사이에선 혼용률 오기재 문제를 근복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선 플랫폼 측의 규제가 더 강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플랫폼이 도입한 사후 규제만으로는 재발을 차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라퍼지스토어 사례에서 보듯, 시험성적서 조작 등으로 유통 플랫폼을 속이거나 기만하려는 행위가 가능하다는 점은 입점 업체에 관대한 유통업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무신사는 지난해 혼용률 조작 3회 적발시 퇴출하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하고, 신규 입점 브랜드와 다운·캐시미어 제품 판매 브랜드에 대해 시험성적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보여주기식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익명의 소비자는 “소비자 항의가 커지자 뒤늦게 내놓은 조치”라며 “3회 적발 후 퇴출하는 규정 역시 브랜드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구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다 강도 높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은희 교수는 “잇다른 오기재에 패션업계 전반의 신뢰가 크게 떨어진 만큼 '적발 시즌별 퇴출'과 같은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라며 “브랜드측에 '쇼크'를 줄 수 있는 강력한 규제로 집행해야만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oh199820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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