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시대'…일본 애니가 장악한 2025 극장가

경제·산업 입력 2025-11-22 08:00:09 수정 2025-11-22 08:00:09 오동건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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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멸의 칼날' 누적관객 560만 돌파…일본 애니의 이례적 약진
견고한 연출에 감정선까지…관객 붙잡은 '완성도'
애니메이션 OTT '라프텔' 월간 이용자 100만명…팬덤 형성 '견인'
일평균 관객 23만→9만명…흥행 이후 찾아온 공백기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21일 기준) 누적관객 563만명을 돌파하며 국내 일본 영화 흥행 역대 1위에 올랐다. [사진=CJ ENM]


[서울경제TV=오동건 인턴기자]


“요즘엔 다들 귀주톱(귀멸의칼날+주술회전+체인소맨) 이야기 뿐이에요. 주변에 이 작품들 안 본 사람 드문걸요”

올해 극장 풍경이 조금 달라졌다. 한국 영화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도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이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연간 흥행 50위에 오르기도 버거워했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뛰어난 작화와 공격적인 연출, OTT를 통해 미리 형성된 팬덤까지 모여 극장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흥행 공식의 변화를 알아차린 극장업계의 행보에 업계의 시선이 모인다.


◇ 일본 애니메이션, 2025년 국내 극장을 장악하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지난 10일 누적관객 560만명을 돌파하며 국내 일본 영화 흥행 역대 1위에 올랐다. 558만9000명의 관객을 모았던 '스즈메의 문단속'을 넘어선 기록이다.

올해 들어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이 돋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팬데믹 전 20년간 '연간 흥행 50위' 선에 단 6편만 이름을 올렸다. 특히 2015~2020년 6년간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연간 박스오피스 50위 내에 진입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상황히 바뀐 것은 팬데믹 이후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2021년부터 약진하기 시작했고, 올 한해에만 무려 4편이 연간 흥행 50위에 이름을 올렸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 '극장판 주술회전: 희옥·옥절',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극장판 진격의 거인: 더 라스트 어택'이 그 주인공이다. 

업계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기존 국내 영화 흥행 구도를 흔들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난 추석 연휴 극장가 최대 이변은 일본 애니메이션 '체인소맨'이었다. 연휴 전까지만 해도 업계에서는 한국 영화 ‘보스’와 ‘어쩔 수가 없다’로 관객이 양분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연휴 막바지였던 지난 11일부터 일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뒤 나흘 연속 정상을 지킨 것이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국내 영화계를 유지하던 패러다임이 하나 둘씩 붕괴됐는데, 체인소맨의 추석 연휴 인기는 또 하나의 흥행 패러다임이 무너진 사건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완성도 높은 작화’와 공격적인 연출…일본 애니메이션 인기몰이

업계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단연 ‘높은 완성도’에서 찾는다. 국내 극장 기록을 갈아치운 ‘귀멸의 칼날’의 인기 배경에는 제작사의 뛰어난 시각효과가 있다. '귀멸의 칼날'의 제작사 스튜디오 유포터블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에서 TV 시리즈의 실험을 극장 스케일로 확장시켰고, ‘무한성편’에서는 화려한 시각효과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화려한 액션과 빠른 전개, 과감한 서사와 감정의 폭주, 작화·연출의 높은 완성도가 시리즈의 공통된 특징으로 꼽힌다. ‘체인소 맨: 레제편’은 액션과 서사를 일치시킨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TV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 1기에서 액션 디렉터로 참여했던 요시하라 타츠야가 극장판 연출을 맡으며 TV 시리즈에서 지적받았던 연출상의 단점들을 보완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극장판에서 액션 장면의 스케일과 디테일은 한층 강화됐다. 단순 시각적 자극이 아니라 서사와 결합된 액션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관객들은 주인공 덴지의 시선으로 전투를 경험하는 1인칭 액션 연출이 도드라진다고 평가한다. 업계에선 제작사의 역량을 발휘해 소위 ‘강-강-강’ 액션이 아닌 완급 조절이 살아 있는 액션을 구현했다고 평가가 나온다.

일본 애니메이션 애청자 박모 씨(24)는 “액션의 박진감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함께 고조돼 여운이 남았다”라며 “주인공의 감정 흐름이 TV 애니메이션보다 극장판에서 더 선명해졌다”라고 말했다.


[사진=소니픽쳐스]


◇ OTT는 경쟁자 아닌 ‘조력자’…사전 팬덤 키우는 플랫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는 그간 극장가 불황을 이끈 강력한 경쟁 상대로 지목돼 왔다. 그러나 일각에선 OTT가 오히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을 떠받치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귀멸의 칼날’이나 ‘체인소 맨’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국내에서 서비스 중인 주요 OTT 대부분에서 시청할 수 있다. 이에 한 영화 평론가는 “과거에는 어디서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몰라 팬이 되지 못했던 이들이 OTT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확인했다"라며 "여기서 형성된 더 크고 강력해진 팬덤이 극장 흥행까지 이끌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OTT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 팬덤으로 유입되는 시청자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넷플릭스는 지난 7월 ‘일본 애니메이션 박람회’에서 “구독자의 50% 이상인 3억명이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5년 동안 약 3배 늘어난 수치다.

국내에서도 애니메이션 전문 OTT 플랫폼인 ‘라프텔’의 유료 결제 이용자는 2022년 17만명에서 2024년 28만명으로 약 64% 증가했다. 월간활성이용자(MAU) 역시 2021년 70만 명에서 2025년 100만명을 돌파했다.

일본 현지에서 방영된 TV 시리즈를 OTT를 통해 이전보다 훨씬 편하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극장판 영화 관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일종의 ‘접근성 장벽’이 낮아지면서 팬덤 저변이 넓어진 셈이다.

CJ CGV 관계자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에 대해 “N차 관람을 하는 재관람률이 7%로 2~3% 수준인 다른 영화보다 높은 편”이라며 “초기에는 기존 팬덤에 어필하는 흥행 양상을 보였지만, 점차 그 이상의 대중적 확장성을 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애니메이션이 휩쓴 뒤 고요해진 극장가…살길 찾는 영화업계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과 별개로, 이들의 인기가 한 차례 지나간 뒤 극장가는 곧바로 공백기를 맞았다. 관객의 발길이 급격히 줄어들자 업계에서는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과 함께, 뚜렷한 돌파구 없이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박스오피스 1위는 ‘나우 유 씨 미’(5만 3445명), 2위는 일부 개봉관에서 여전히 상영중인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1만 4123명), 3위는 ‘프레데터: 죽음의 땅’(9207명)이었다. 10위권 전체 관객을 합쳐도 9만여 명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 극장 일평균 관객 23만명에 비해 뚜렷한 감소세다.

올 상반기 영화관 총 관객은 4200만명대로 팬데믹을 제외하면 21년만에 최저치다. 이에 극장업계는 자체적인 돌파구 찾기에 나서고 있다. CGV는 최근 모바일 앱 내 ‘단체 할인·대관 서비스’ 베타 버전을 선보였다. 앱 메인 화면에서 곧바로 단체 관람이나 대관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접근성과 편의성을 강화했다.

CGV는 기존에 고객센터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단체·대관 절차를 앱 기반으로 전환하면서, 고객이 쉽고 빠르게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한 영화관 관계자는 “가을은 야외 활동이 많아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줄어드는 시기지만, 올해는 특히 신작 부재가 문제”라며 “화제성 있는 작품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oh199820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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