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일의 인생한편 |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사실과 믿음

전국 입력 2025-07-11 13:02:01 수정 2025-07-11 13:02:01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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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2024)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영화평론가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팩트(fact)’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팩트란 흔히 ‘사실’을 뜻하며, 일반적으로는 객관적으로 판별 가능한 사건이나 데이터를 의미한다. 그래서 팩트를 확인하는 일은 우리가 감정이나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전제가 된다. 이는 올바른 판단을 위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이라 여겨지는 사실이라 해도 맥락이 제거되거나 과도하게 단편적으로 제시될 경우,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이러한 ‘사실’과 ‘믿음’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혼란의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고통받고 무너지는지를 심도 있게 다룬다. 이 작품은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수사극처럼 보이지만, 진실과 믿음 사이의 충돌 그리고 인간의 내면적 갈등을 다층적으로 그려낸다.

일반적으로 수사극은 과학적 증거와 객관적 단서들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혀가는 구조를 따른다. 범인이 남긴 흔적을 통해 사건 현장을 재구성하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범인을 특정한 뒤 검거에 이르는 과정이 핵심이다.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역시 기본적으로 앞에서 제시한 수사극의 구조를 따른다. 그러나 이 작품이 기존의 수사극과 구별되는 지점은 단순한 범죄 해결을 넘어서, 부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 대결을 중심에 둔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경찰청 소속의 베테랑 프로파일러 장태수와 연쇄살인의 용의자인 그의 딸 장하빈 사이에서 펼쳐지는 심리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현장에는 어김없이 딸 하빈의 흔적이 남아 있고, 장태수는 그녀가 진짜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휘말린다. 그는 진실을 밝혀야 하는 프로파일러로서의 직업 윤리와 딸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로서의 부정(父情)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러한 내적 갈등으로 인해 사건의 실체는 모호해지고, 이야기는 진실과 믿음이 얽힌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지점은 장태수가 딸의 범죄 사실 여부를 밝히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의 감정을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딸을 바라보는 왜곡된 부모의 시선, 피해자인 줄 알았던 인물이 사실은 사건을 설계한 진범이었다는 반전, 자식의 죄를 감추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아버지의 파국적인 선택 등, 이야기는 믿고 싶은 진실을 추구하거나 감추고, 진실을 은폐하는 인간의 맹목성이 지닌 비극을 파헤친다. 이처럼 드라마는 우리가 객관적이라 믿는 사실들이 결국은 선택된 정보의 조합에 불과하며, 그 해석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험은 드라마 속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신념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때로는 그 신념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해석은 틀렸다고 단정한다. 이렇게 자신의 무오류성을 전제한 발화 태도는 정당하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태도는 타인에게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거나 확보하기 위한 언어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보고 듣고 믿는 것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능력, 즉 ‘반성’의 능력은 사건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이런 상황을 두고 “방황하는 자가 속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길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진실 앞에 도달할 수 있다는, 역설적이지만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방황의 세계 속에서 진실을 추적하는 한 인간의 고통과 혼란, 그리고 감정의 깊이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진실이란 단순히 하나의 ‘팩트’로 증명되는 것이 아닌 무수한 가능성과 의심의 조각들이 상호 교차하는 복합적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 
·선문대학교 문학이후연구소 전임연구원
·롤링스톤 코리아 영화 부문 편집위원 활동 
·전주국제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역임 
·TBN 전북교통방송 프로그램 ‘차차차’ 라디오 방송 활동
·웹진 <문화 다> 편집위원 역임 
·제3회 유럽단편영화제 섹션 ‘삶을 꿈꾸다 (DERAMERS)' 책임 강연 
·계간지 <한국희곡> 편집위원 역임 
 -연극인 인터뷰 <최치언, 정범철, 김광탁 작가> 및 연극 평론

‘인생한편’은 영화평론가 심우일이 매주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삶의 질문과 여운을 찾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취재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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