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일본 ‘수출 규제’에 정부는 꽃놀이패를 준비하자
최근 주식시장의 화두는 단연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 이슈다. 뚜렷한 명분 없는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식시장은 경제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 경계감을 가지면서도 관련 수혜주 찾기에 분주해지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소외주였던 종목들이 수혜주로 떠올라 주가가 급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론 씁쓸한 면도 없지 않다. 단기적으로 관련 수혜주들은 반사이익을 누리겠지만,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가 장기화 될 경우 우리 경제 전체가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재무성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규제에 따른 최악의 시나리오로 한국은 45조원, 일본은 1,700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했다. 극단적인 시나리오이지만 단순 비율로만 비교해도 우리가 입는 피해가 더 큰 것은 확실해 보인다.
특히 일본 정부는 플로오린 폴리이미드(FPI), 포토 리지스트(PR), 에칭가스(HF) 등 전 세계적으로 70~90%를 독점하는 소재 규제에 나서 국내 주력 산업의 아킬레스건을 노렸다. 소재 수출을 금지한 것도 아닌 규제 강화 정책은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할 할 수 있다는 모종의 압박감을 보여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자유롭고 열린 경제‘를 외친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은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한국에 대한 규제에 나서면서 철저히 앞뒤가 다른 행동을 보였다. 이미 내부적으로 이해득실 파악이 끝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상당히 주도면밀한 모습이다.
이번 일본의 경제보복은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다. 과정은 다소 다를 수 있지만, 강대국의 경제보복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사드보복과 흡사하다.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로 국내 관광·숙박 업계는 7조 5,000억원의 적자를 냈고, 진출 기업 피해액까지 더하면 수십 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부는 강대국들의 경제보복에 대비한 꽃놀이패를 준비해야 한다. 한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독점적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
지난 3일 정부는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2025년까지 매년 1조원 규모의 지원을 통해 소재 국산화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물론 소재 국산화를 통해 안정적인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소재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방어일 뿐 공격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일본은 수출 규제에서 더 나아가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자칫하면 한달 만에 1,100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가 추가될 가능성도 커졌다. 일본이 또 다른 독점 소재 및 제품을 통해 우리 경제를 압박한다면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정책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일본의 수출 규제품목을 우리가 모두 만든다는 것은 어렵고,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일본은 기술력과 생산 능력에서 절대·비교 우위를 가지는 품목만을 골라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글로벌 경제 강대국들은 경제 보복카드로 미국은 금융, 중국은 희토류, 중동 국가는 석유를 이용해 왔다. 이들의 공통점은 독보적 경쟁력을 가진 분야를 바탕으로 상대국을 압박해왔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희토류는 센카쿠 열도 분쟁 당시 중국이 수출중단카드로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낸 전략물자다. 중국은 전 세계 공급량의 70%에 달하는 희토류를 생산하고 있지만, 정작 매장량은 30%대에 불과하다. 희토류 매장 국가들이 생산을 늘리지 않는 이유는 생산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희토류는 분리·정련하는 과정에서 방사능이 발생하는 등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해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 생산보다는 수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를 이용해 전세계 희토류 공급을 독점하고 무기화하는데 성공했다.
중국의 사례를 보고 정부는 전략적 판단을 통해 이번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에 대응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 이슈와 더불어 언제든 발생 가능한 국가 간 무역분쟁에도 대응할 수 있는 꽃놀이패를 만들어야 한다.
/배요한기자 by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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