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럭셔리'만 살아남는다…심화되는 명품 업계 양극화
경제·산업
입력 2025-05-10 08:00:03
수정 2025-05-10 08:00:03
유여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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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시장의 부진…소비 양극화 양상 뚜렷해져
업계 진통 속 굳건한 '에르메스'… 韓선 '에루샤'
새로운 대체 선택지, '듀프'와 오프라인 중고 매장
'디올 원가 8만원·노동착취', 명품 헤리티지의 추락

[서울경제TV=유여온 인턴기자] 세계 명품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의 오락가락 관세 조치, 중국의 경기 침체 등 거시적인 경제 변화는 물론 명품의 가치가 점차 희석되고 있는 흐름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한 ‘듀프’ 소비는 올해도 계속되는 모양새고, 국내에서는 특히 중저가 디자이너 브랜드가 각광받는 추세다. 이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명품의 로열티를 보여주는 브랜드는 단연 에르메스다. 한국에선 그에 루이비통과 샤넬을 더한 ‘에루샤’ 라인이 명품 중의 명품으로 통한다. 그러나 그 외,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은 크리스찬디올, 펜디, 페라가모, 톰포드 등은 부진한 실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명품 시장에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업계 전반적 내림세…특히 중하위 브랜드 약세 뚜렷대표 명품 그룹의 1분기 매출을 살펴보면,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203억1100만 유로로, 전년 동기(206억9400만유로) 대비 1.85% 감소했다. 그중에서도 매출의 78%를 차지하는 패션 및 가죽제품은 지난해보다 3.6% 줄어든 101억유로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진한 실적과 함께 주가도 급락했다. 2021년 유럽 기업 시총 1위에 오른 LVMH. 2023년에는 유럽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4000억유로를 돌파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고점(4948억유로)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구찌 모회사인 케링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해 38억8000만에 그쳤다. 그중에서도 약 절반을 차지하는 '구찌'의 매출은 25%나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LVMH와 케링의 실적 부진엔 그룹 하위 브랜드들의 하향세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 그룹은 명품 중에서 비교적 브랜드 가치가 낮은 중하위 브랜드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SNS에서 유명한 '명품계급도'로 보면 위에서 세~네 번째 즈음에 위치하는 건데, 이들에 대한 대중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은 브랜드들의 고전은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브랜드별 작년 매출을 살펴보면, 펜디코리아는 전년 대비 22% 감소한 1187억원을, 페라가모코리아는 12.7% 감소한 858억원을 기록하며 2010년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이밖에 크리스찬디올, 톰포드, 셀린느도 각각 9.5%, 4.6%, 1.3% 줄어든 매출 성적표를 받아들였고, 프라다코리아는 지난해 5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 업계 진통 속 굳건한 '에르메스'… 韓선 '에루샤'
업계 전반적인 하향세에도 '초고가 브랜드'들은 흔들림 없는 위상을 지키는 모습이다. 특히 LVMH의 부진을 계기로 명품기업 시총 1위에 오른 '에르메스'의 독주가 돋보인다.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명품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한 가운데, 에르메스는 가장 낮은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LVMH 19.85%, 프라다 19.34%, 케링그룹 25.45%, 버버리 27.69% 등 줄줄이 주가가 크게 빠진 반면, 에르메스는 같은 기간 5.27% 하락했다. 이 같은 에르메스의 약진에는 '브랜드 가치'가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르메스는 강력한 단일 브랜드를 자랑한다. 이에 반해 LVMH는 루이비통을 비롯해 펜디, 지방시, 겐조 등 17개 명품 브랜드를 포괄하고 있으며, 케링은 구찌,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생 로랑 등을 포함한다. 종합적인 매출 측면에서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에르메스는 여타 명품들과의 '밸류 경쟁'에서도 큰 차별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가족경영을 내건 '전통'의 이미지와, 구매 진입장벽이 높은 점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효율성보다는 고품질을 중시하는 고집, 오픈런을 해도 살 수 없고 사전에 착실히 구매 실적을 쌓아야 한다는 점이 에르메스의 브랜드 가치를 한층 높였다는 평가다. 돈을 모으고 줄을 서는 등 노력하면 구매가 어렵지 않은 브랜드들과 달리, 에르메스는 오로지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한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불황기에도 매출 타격이 적은 이유다.
한국에서도 에르메스는 승승장구 중이다. 작년엔 전년 대비 무려 20.9%나 증가한 매출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찍었다. 루이비통과 샤넬도 지난해 국내에서 역대 최대 매출을 올렸다. 샤넬코리아는 전년 대비 8.2% 증가한 1조8446억원을, 루이비통코리아는 5.8% 증가한 1조7844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 절벽'이란 말이 무색하게 하이주얼리, 워치 브랜드도 일제히 호실적을 냈다. 쇼메, 프레드 등을 유통하는 LVMH워치앤주얼리코리아는 작년, 전년 대비 32.8%나 뛴 1459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불가리코리아는 전년 대비 23.3% 성장한 4191억원을, 티파니코리아도 7.6% 증가한 377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전반적 명품 소비가 위축되는 흐름에도,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최상위 명품 소비는 견조한 형국이다. 중하위 브랜드들이 하나같이 직격탄을 맞고 내리막을 걷고 있는 모습과 대비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명품업계에도 소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일관된 진단을 내놓는다.

◇ 명품의 대체 선택지, '듀프'와 오프라인 중고 매장
그렇다면 명품 소비를 줄인 중산층과 젊은세대는 어디로 옮겨간 걸까. 업계는 그 답을 오프라인 중고 매장과 '듀프' 소비 활성화에서 찾는다. '듀프(Dupe)'는 '복제하다(Duplicate)'의 줄임말로, 미국 제트 세대로부터 촉발한 소비 패턴이다. 원조 제품과 유사한 디자인, 성능을 갖추고 있지만, '모조품(Replica)'과는 차이가 있는 대체품을 일컫는다. 모조품이 로고나 디자인을 그대로 복제해 '똑같아지는데' 주력한다면, 듀프는 대표적인 특징을 따라해 비슷한 느낌을 내는 것에 집중한다. 정품인 것처럼 불법 복제하는 것이 아닌, 자체 브랜드 이름을 달아 출시하기 때문에 가격도 모조품보다 월등히 낮게 형성된다.
미국 월마트가 '버킨백(에르메스의 대표제품)'의 대체품으로 내놓은 '워킨백(Wirkin Bag)'이 대표적이다. 해당 제품은 버킨백의 100~150분의 1 가격(한화 약 11만원)으로 출시됐는데, 판매가 개시되자마자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SNS를 타고 크게 바이럴되며 가성비를 따지는 젊은 소비층에 합리적이고 색다른 선택지로 환영받았다. 국내에서도 한 듀프 제품이 지난해 뷰티업계를 강타한 바 있다. 바로 다이소가 내놓은 '손앤박 멀티컬러밤'이다. 샤넬의 '레드 까멜리아 립 앤 치크 밤'과 유사한 용기 디자인을 갖춘 이 제품은 '샤넬 저렴이 버전'으로 단숨에 히트 반열에 올랐다.
특히 유명 뷰티유튜버들이 두 제품을 구분하지 못하겠다는 리뷰를 잇달아 내놓자 구매 열기는 한층 거세졌다. 발색과 성능은 별 차이가 없는데 가격은 본 제품(6만원대)의 20분의 1 수준(3000원)에 불과하다는 강점 덕에 젊은 고객층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손앤박 멀티컬러밤'은 지난해 다이소 뷰티 부문 매출 신장률 '144%'에 톡톡 기여한 효자상품으로 꼽힌다.
'오프라인 중고 매장'도 명품의 대체 선택지로 각광받고 있다. 국내에선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캉카스백화점'이 대표적이다. 아시아 최대 민트급(Mint condition·신품에 준하는 중고 명품) 전문점인 해당 매장은 지하1층~지상12층 규모에 수십만 개 명품을 구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루샤'는 물론, 하이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까르띠에·쇼메' 등과 함께 세계 10대 시계 브랜드 '파텍필립·바쉐론콘스타틴·오데마피게' 등의 제품을 모두 갖췄다.
한 업계 전문가는 "이 같은 대형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 다양한 브랜드를 한 곳에서 경험할 수 있고 온라인 플랫폼과는 달리 직접 상태를 확인하고 착용해 볼 수 있어 점차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또 "본품과 동일한 가치를 지녔지만 가격은 저렴한 '중고 명품'으로 몰리는 데는 실속을 챙기겠다는 소비자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고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것도 하나의 이유다. 과거엔 많은 이들이 명품에 '평생 소유'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제는 '깨끗이 쓰고 나중에 되파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인식이다.
어차피 차후 중고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면 최대한 저렴하게 구매하는 게 이득이라는 것이다. 또 리셀 거래의 경우 향후 프리미엄을 인정받아 차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재테크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목적이 어떻든, 제값 주고 신상을 사는 것보다 상태 좋은 중고를 싸게 사는 것이 낫다는 소비자들의 판단이 중고품에 대한 높은 수요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소비자에 각인된 '디올 원가 8만원', 줄어드는 명품의 헤리티지
이렇듯 소비자들이 '실속'을 챙기게 된 속내에는 복합적 이유가 있다. 가장 주된 배경은 명품의 헤리티지가 줄어든 현실이다. 지난해 큰 논란을 빚었던 명품업계의 노동착취 실태나 '디올 원가 8만원' 사태 등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명품에 대한 환상이 크게 퇴색됐다는 분석이다. 385만원짜리 디올 가방의 원가가 8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대중에게 널리 퍼졌고, 그 과정에서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한 사실도 속속 드러나며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업계가 내세우는 '장인의 수작업'이 아닌, 동남아 이민자들의 불법 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란 점도 소비자들에 큰 실망을 안긴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세계 명품 생산의 50∼55%를 커버하는 이탈리아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상당 부분을 중국계 이민자들에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SNS에는 신뢰하던 브랜드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속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며 명품이 담보해 온 정통성, 윤리성 등 핵심 가치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경기가 좋아져도 명품 기업들의 매출이 크게 성장하지는 못할 거란 예측이 대다수다. 이런 와중에 독보적 승자는 '에르메스'와 같은 하이브랜드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전망이다. '돈이 있어도 못산다'는 희소성, 그것이 증명하는 'VIP', '초고소득층' 이미지 등 차별화된 정체성이 없다면, 더 이상 명품 브랜드라는 이유만으로 이점이 작동하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젊은 층은 '비싼 진품이 아니어도 된다'는 마인드로 듀프 소비를 시작했고 중고품을 사는 등 다양한 선택지를 활용 중이다.
한번에 소비 출혈이 큰 명품에서 눈을 돌려 특색있는 디자이너 스몰 브랜드로 옮겨가는 흐름도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명품 시장의 몰락'이 아닌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명품의 실수요자인 고소득층만 남게 되면서 그간의 거품이 빠지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명품 시장에 주기적으로 유입되던 중산층 소비가 줄어도 하이엔드 고정수요는 그대로 유지될 거라는 분석이다.
"에르메스는 불황을 타지 않는다"는 말은 업계 불문율로 통한다. 전반적 소비 위축에도 하이엔드 기업들은 끄없는 가운데, 다소 애매한 위치에 놓인 중하위 브랜드들은 위기의 기로에 놓였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이전과 같은 위상을 되찾기 위해선, 신규 디자이너 브랜드들과는 분명히 다른 '명품의 헤리티지'를 강조하는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사의 로고플레이가 더 이상 효과를 보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특장점을 발굴하는 등 브랜드 정체성을 고심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말이다. 오로지 최고급만 살아남는 명품 시장에서, 중하위 브랜드들이 당당히 부활해 업계의 전반적인 활기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yeo-on03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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