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은행원을 꿈꾸지 않아 다행이야
아는 이름이 나오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검사가 띄워둔 엑셀 차트 속 ‘불합격자’ 명단에 은행원을 꿈꿨던 대학 선배나 친구가 있을까 두려웠다. 알 사람은 다 아는 오랜 관행이었다는 ‘취업 청탁’. 그 현실에 새삼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독했던 취업준비생 시절이 떠올라, 은행원을 꿈꾸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던 게 사실이다.
청년을 울리고 사회적 신뢰를 훼손한 당사자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어떤 얼굴이었나. 놀랍게도 대부분이 눈물을 보였고 최종 변론 메시지도 거의 동일했다. 늘 그래왔던 ‘관행’에 의문을 품기보다 철저히 수행하기 바빴다는 것이다. 오랜 관행이었기에 정치인의 외부청탁이나 은행 임직원 자녀들을 따로 관리했고, 남녀 성비는 3대 1로 맞췄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내가 젊은 시절 욕했던 기성세대가 되어 여기 서 있다”며 참담함을 토로한 이도 있었다. 문제의식 없던 하루 하루가 모여 결국 부끄러운 현재를 만들었다는 상당히 솔직한 고백이었다. 이처럼 불합리한 관행이 조직 내 관습이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이 어려워진다. 개인의 관점에서는 덜 예민했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공정성’이라는 중대한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채용비리 사안에 대한 해결은 개인에 대한 처벌을 넘어, 제도적 개선까지 나아가야 한다. 현재 관련 재판들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고 대부분 집행유예로 마무리되고 있다. 실제 KB국민은행과 광주은행이 그랬고,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올해 6월 항소심에서 8개월을 감형받기도 했다. 이제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만이 남은 상황이지만,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부진하다. 특히 청탁을 받은 자 뿐 아니라 청탁을 한 자에 대한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꿈꾸지 않아서 다행인 미래’를 피하려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go838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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