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무너지는 세운상가 생태계…서울시 뭐했나
[서울경제TV=지혜진기자] 한 나라의 수도엔 어떤 공간이 마련되어야 할까. 서울의 중심을 잠자는 곳으로 만들면 되겠냐는 한 상인의 반문에 든 생각이다. 현재 서울의 중심인 을지로 일대에는 제조업 단지들이 자리잡고 있다.
올해 1월과 3월. 철거 위기에 내몰린 을지로 세운지구 일대를 찾았다. 낡은 외관과 달리 전기차부터 인공위성까지 온갖 첨단장비를 만들 수 있는 곳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4차산업 혁명 기조와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다.
대학연구팀에서부터 의료기기 제작자,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이곳을 찾는다. 많은 것이 쉽게 사라지고 대체되는 서울에서 을지로 세운지구는 장인들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장인들은 협업하며 을지로 일대를 하나의 생태계로 일궈왔다.
그 공간에서 장인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다. 시행사는 적절한 보상을 해줬다며, 개인이 사업하다 망하면 나라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하나의 생태계가 스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은 씁쓸하다.
기업은 자본의 논리를 따랐다 치더라도 정책은 안일했다. 많은 사람의 먹고 사는 일이 달린 일인데 지난해 갑자기 ‘세운상가 재정비 전면 검토’를 발표했다. 2017년 첫 사업시행인가가 난 뒤 2년이 지난 일이다.
기존 정책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과감히 방향을 전환한 건 환영할 일일지 모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안일함은 계획의 방향을 선회한 뒤에도 이어졌다. 2019년 말 나오겠다고 한 계획은 2020년 3월이 되어서야 나왔다. 그동안 상인들의 불안정한 상태는 계속됐고, 생태계를 떠나는 이들도 늘어났다.
뒤늦게 나온 계획은 자본으로부터도, 사람으로부터도 외면받았다. 시행사는 최근 세운지구에 조성할 공동주택을 오피스텔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10년을 내다본 사업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생긴 막대한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상인들은 여전히 생존권 위협을 받고 있다. 여전히 퇴거 압박을 받는 중이다. 상인들은 정부 계획이 현실화된다 해도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문제가 생길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은 고사하고 당장 임시사업장으로 삼은 컨테이너로의 이주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계획이 나온 배경에는 산업생태계에 대한 무지가 있다. 정부는 이번 계획을 상인, 토지주, 사업시행자, 전문가와 80차례 이상 논의한 결과라고 밝혔지만, 정작 상인들은 정부 관계자를 만난 횟수를 손에 꼽는다고 말한다.
정부는 또다시 협의체를 구성해 문제를 풀겠다고 한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는 우려는 영 근거 없는 기분은 아닐 것이다. 상인들 역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가든파이브 전례가 반복되는 건 아닐지, 기시감을 느끼고 있다.
기시감이 기우에서 멈추려면 산업생태계에 대한 이해와 명확한 행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heyjin@sedaily.com
[ⓒ 서울경제TV(www.sentv.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 [대박땅꾼의 땅땅땅] 왜 토지투자를 할까? 목표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
- [대박땅꾼의 땅땅땅] 토지투자의 원리, 정부 정책을 따라간다
- [이지연의 스마트 스피치] 자발적 IR커뮤니케이션 활동의 필요성과 효과
- [대박땅꾼의 땅땅땅] 토지투자의 원리, 사람에 투자한다
- [대박땅꾼의 땅땅땅] 토지투자의 원리, 1시간에 투자한다
- [대박땅꾼의 땅땅땅] 무모한 도전이 될까, 위대한 도전이 될까?
- [대박땅꾼의 땅땅땅] 꼼꼼히 준비해야 하는 지목변경
- [대박땅꾼의 땅땅땅] 기획부동산을 조심하자
- [기고] 국가인재생태계 개혁 없다면, 대한민국 미래는 없다
- [대박땅꾼의 땅땅땅] 3,000만 원짜리 토지 투자
주요뉴스
오늘의 날씨
마포구 상암동℃
강수확률 %
기획/취재
주간 TOP뉴스
- 1경기 이천시, ‘경기형 과학고’ 예비 1차 합격
- 2대형 SUV 신차 출시 ‘봇물’…車 트렌드 바뀔까
- 3탄핵정국 속 농협금융·은행 인사 고심…수장 교체 가능성
- 4후판가격 협상 해 넘어가나…3개월째 ‘공회전’
- 5LG전자 조주완 “위기는 위험과 기회…최악 상황 대비"
- 6셀트리온,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테키마’ 美 FDA 허가 획득
- 7“고물가에 사전예약 증가”…유통가, 설 채비 ‘분주’
- 8건설현장 30%는 외국인…“AI로 소통장벽 허물어요”
- 9새해에도 먹거리 부담…이온음료·커피·우유 가격 오른다
- 10당근책 잃은 밸류업…일제히 '파란불'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