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기업 경영 흔드는 ‘상법 개정안 리스크’ 쟁점은
경제·산업
입력 2024-11-15 18:07:14
수정 2024-11-15 18:07:14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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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더불어민주당이 주주에 대한 이사(理事)의 충실 의무를 명문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죠. 소액주주의 권익을 강화한다는 취지지만 경영계에선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거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오늘 이 얘기 해보죠.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서 유정주 기업제도팀장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정주 한경협 기업제도팀장]
네. 안녕하세요.
[앵커]
우선, 세계 증시는 트럼프 랠리인데 한국 증시만 추락하고 있습니다. 한국 증시만 소외되는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유정주 한경협 기업제도 팀장]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대내와 대외 여건이 모두 어렵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당선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반도체지원법, IRA 보조금 축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 미국이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관세를 인상하는 등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게 되면 반도체는 물론 자동차, 이차전지 등 주력 산업의 타격이 예상됩니다.
또,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압박과 경제블록화 심화 등이 예상되는데,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전망입니다. 게다가 기업들의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올해 상반기 내수기업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9% 감소했는데, 코로나 첫해였던 2020년 이후 첫 역성장입니다.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 확대로 기업들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면서 신성장동력 엔진마저 꺼져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도 쉼 없이 기업들이 투자를 늘려왔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기업투자가 감소로 돌아섰습니다.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내수도 좋지 않고 미래마저 어둡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대한민국을 외면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앵커]
일부에서 한국 증시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기업 지배구조 탓으로 보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유정주 한경협 기업제도 팀장]
사실 그동안에도 오너 중심 대기업 경영체제를 문제 삼으면서 여러 규제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규제가 증시활성화에는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글로벌 스탠다드에 어긋나는 규제로 한국 기업들이 겪는 역차별과 부작용이 매우 심각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 기업은 대주주가 아무리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어도 감사를 뽑을 때에는 딱 3%만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3% 룰’이라고 하는데요. 1인당 국민소득이 87달러에 불과했던 1962년에 만들어진 규제입니다. 전 세계에서 주주들의 의결권(재산권)을 강제로 제한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배임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용기준이 불분명해서 걸면 걸리는 형벌입니다. 기업인들은 신사업 진출이나 M&A, 구조조정 등을 결정할 때, 배임죄 시비에 걸리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까지도 나옵니다.
정작 한국 증시가 해외 투자자로부터 외면받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상장기업에 대한 여러 규제 때문에 한국이 아닌 해외에 상장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습니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 야놀자, 무신사 등 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토종 유니콘들이 나스닥 상장을 저울질한다고 합니다. 한국 증시가 혁신 기업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앵커]
두산, LG 사례처럼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영자들이 소액주주에 대한 배려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재편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데요. 그래서 상법 개정 얘기도 나온 거 아닌가요?
[유정주 한경협 기업제도 팀장]
LG화학이 차세대 성장산업인 배터리 사업 육성과 투자재원 조달을 위해 회사를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해 증시에 상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LG화학 주주가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입었다는 것인데요.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이사들에게 회사 이익만 챙기지 말고 주주 이익을 철저히 챙기라는 것이 최근 국회에 발의된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입니다.
좋은 취지의 이야기지만, 법 개정으로 목적이 달성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회사의 합병이나 분할 과정에서 소수주주 이익이 침해되었다면, 이 부분을 개선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법상 합병비율 산정기준을 바꾼다거나, 자회사 상장시 모회사 주주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한다거나, 합병·분할에 반대하는 주주들은 주식매수선택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헤지펀드는 ‘주주 이익 보호’라는 추상적 개념을 가지고 회사 이사들을 배임죄 고발이나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위협할 것입니다. 회사 경영자들은 온갖 사법 리스크와 송사에 시달리게 될 텐데요. 과연 경영자들이 이런 위협을 겪으면서까지 과감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앵커]
이사 충실의무가 대체 무엇인지, 경제계가 느끼는 우려사항이나 부작용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유정주 한경협 기업제도 팀장]
이사 충실의무는 상법 제382조의3에 규정된 내용입니다.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상법 개정안은 여기에 회사 외에 주주까지 포함시키려는 것입니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이 확대되면, 소송 남발 등 법적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투자, M&A 등으로 불이익 받았다고 판단하는 주주들의 배임죄 고발 등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회사가 인수합병 계획을 발표하면, 이사를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이 건당 3~5건 정도 제기됩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미국 상장회사 인수합병 거래를 분석한 결과, 매년 인수합병 거래의 71~94%가 주주대표소송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밸류업은 커녕 경영 효율성 저하로 인한 기업 가치 하락이 우려됩니다. 이사가 소수주주 뿐만 아니라 행동주의펀드, 헤지펀드, 국민연금, 기관투자자 등 다양한 주주들의 이익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배임죄 리스크도 감당해야 하는데, 이러면 신산업 진출은 거의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지난 1983년 삼성이 반도체산업에 진출한 후 1987년까지 1,400억원의 적자가 누적되었는데, 앞으로 이사충실의무가 주주로 확대되면 이러한 투자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여기에 행동주의 펀드의 타겟이 되는 우리 기업이 늘어날 것입니다.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및 소각 압력, 경영권 위협 등 다양한 요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앵커]
그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이 있을까요?
[유정주 한경협 기업제도 팀장]
주식투자자를 위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부동산에 유입된 자금의 증시 유입, 서학개미의 국장으로 귀환 등을 위한 제도적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장기투자자에 대한 배당 차등 지급, 배당소득세 분리과세 등 증시에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인센티브가 필요합니다.
주식시장에 투자를 유도 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유망한 신산업 발굴입니다. 미국 엔비디아와 같이 신산업을 주도할 만한 기업이 국내시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업이 신산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 등 친기업적 경영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만일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와 같이 규제만 강화한다면 국내 주식시장의 미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유정주 한경협 기업제도 팀장이었습니다.
[영상편집 김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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