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침체에 빠진 면세업…돌파구 찾을 수 있을까
코로나 탓만 하기엔…이미 예고된 불황
유커·사드·다이궁…중국 의존성도 문제
공항 임대료·기나긴 수속 절차도 걸림돌

[서울경제TV=유여온 인턴기자] “요즘 누가 면세점을 가요. 환율도 높고...예전엔 여러 혜택도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엔 온라인이나 직구로 훨씬 싸게 살 수 있어서 별로 메리트를 모르겠어요” “일단 비싸고요. 상품이 그렇게 다양한 것 같지도 않아요. 공항갈 때 아이쇼핑 하는 정도지 굳이 사고 싶다는 생각은 안드는 것 같아요” 면세점에 대한 소비자들의 생각을 물었다. 고환율로 가격 경쟁력을 잃고, 유통 채널 다변화로 ‘면세점만의 강점’을 잃어버렸다는 게 일반적 목소리다.
면세점의 황금기를 열었던 2015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업계는 좀처럼 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국내 주요 4사인 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모두 적자의 늪에서 고전하는 모양새다. 롯데면세점이 1432억원으로 가장 큰 영업손실액을 기록한 가운데, 신라 697억, 신세계 359억, 현대 288억 등 줄줄이 적자를 기록했다. 이들의 합산 영업손실은 무려 2776억원.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면세업계는 매장의 면적을 축소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 등 사업을 정리하고 희망퇴직을 단행하고 있다. 신세계면세점은 지난해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올 1월에는 부산 센텀시티점을 폐점했다. 현대백화점은 오는 8월 동대문점의 문을 닫고 무역센터점을 기존 3개층에서 2개층으로 축소 운영키로 했다. 롯데면세점도 지난해 특별 조기퇴직 프로그램을 단행한 바 있고, 최근에는 업계 최초로 다이궁과의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면세 사업은 ‘황금알 낳는 거위’로 불렸다. 라이센스만 따면 기업의 캐시카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겨져 너도나도 뛰어뜨는 형국이었다. 한화, 두산, 하나투어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골칫덩어리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대주에서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면세업. 짧은 호황을 누리다 만성 불황에 시달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 코로나 탓만 하기엔…이미 예고된 불황
보통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을 불황이 본격화된 기점으로 꼽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화와 두산은 그 이전부터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일찍이 사업을 접었다. 한화갤러리아는 2019년 4월 여의도 갤러리아 63의 특허를, 두산은 같은 해 10월 두타면세점의 특허를 반납하며 면세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다.
2016년 영업을 시작한 한화와 두산이 면세사업에서 손을 떼기까지 받은 성적표는 처참했다. 한화갤러리아면세점은 1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두타면세점은 600억원 가량의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두타면세점’ 자리를 이어받은 현대백화점도 고전을 면치못했다. 유커가 많은 강북에 진출하기 위해 두산의 보세창고와 직원까지 승계했지만, 한 차례도 흑자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면세업의 불황이 비단 코로나로 인한 고객 감소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면세시장이 단기간에 레드오션이 돼 업계 간 출혈경쟁이 과열된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꼽는다. 너도나도 청사진을 그리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모두가 살아남을 수는 없는, 예고된 불황이었다는 이야기다. 더 근본적 문제로 거론되는 문제 단연 '중국'이다. 면세 사업은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 다이궁(중국인 보따리상) 등 주요 고객이 모두 중국을 향하고 있어 의존도가 과도한 구조다.

◇ 유커, 사드, 한한령, 다이궁…중국 의존성도 문제
중국발 첫 위기는 면세업계 출범 초기인 2016년에 발생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한한령이 발동해 유커의 발길이 끊긴 것. 코로나로 두번째 위기를 맞으며 중국 의존 문제는 더욱 불거졌다. 그간 유커의 빈자리를 채워준 건 '다이궁'이었는데, 이들에게 지불하는 송객수수료가 50%까지 치달아 수익성이 날로 악화됐다. 다이궁 대상 판매를 적극적으로 늘린 전략은 업계 매출 최고치(2019년, 24조8586억원)를 경신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늘어난 매출만큼 비용도 올라 순수익률은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중국 경기 침체가 불어닥쳤다. 중국인 관광객 1인당 소비액을 살펴보면, 2016년 1800달러에서 2024년 950달러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이는 중국 정부가 국내에 조성한 면세 지역 '하이난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이난성의 지난해 면세 매출은 전년 대비 2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 부진 장기화로 중국인들이 지갑을 잘 열지 않게 됐는 것이다. 소비 심리 위축에 더해, 여행 트렌드와 소비 취향이 바뀐 점도 변수로 작용했다. 중국 여행객들은 이제 면세점이 아닌 한국 대표 로드숍(올리브영, 다이소 등)이나 편집숍을 찾는다. 이들 매장이 SNS 상에서 주요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을뿐더러 중저가 브랜드인만큼 가격 부담도 적고 접근성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유커나 다이궁 등이 복귀하더라도 이것이 기업들의 실적 반등으로 이어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선 세간에 들려오는 '한한령 해제'나 '중국 단체 관광객 한시 비자 면제' 등 소식에도 이전과 같은 성과를 기대할 순 없다고 말한다. 이들 정책이 한시적으로 관광객의 유입을 늘릴 수는 있지만 매출 성과를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제 면세업계가 중국에의 의존을 끊고 신활로를 모색할 때라고 경고한다.
◇ 인천국제공항의 높은 임대료, 기나긴 수속 절차 등도 걸림돌
당면한 문제는 또 있다. 면세 사업자들이 인천국제공항에 지불하는 높은 임대료와 출국장 혼잡 문제다. 면세 업계는 그간 시내 면세점을 정리하면서도 인천국제공항 입점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오고가는 여행객들이 관례상 매장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 영업 활동 측면에서 분명한 이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 도입된 '객당 임대료제'에 출국장 혼잡 문제가 얽히면서 공항 면세점들 또한 악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항 입점 면세점들은 여객수에 비례해 임대료를 낸다. 지난해 신라, 신세계, 현대가 부담한 인천공항 면세구역 임대료는 약 5051억 원으로, 이들 3사 합산 매출의 1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여객수'가 '고객수'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게 면세 사업자들의 지적이다. 최근 출국 수속이 3시간 이상 걸리는 등 혼잡이 계속돼 공항 이용객들이 쇼핑할 여유 시간없이 곧장 출국장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늘어나면 그에 비례해 더 많은 임대료를 부담해야 하는데, 정작 매장에 들르는 고객은 적어 매출은 줄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복잡하게 꼬인 문제들을 풀지 못하면, 면세업계의 미래는 여전히 어둡다.

◇ 면세업계, 돌파구 찾을 수 있을까
업계에선 앞으로도 상황이 그리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그래서일까. 지난 2일, 현대백화점이 동대문점 폐점을 예고하자, 증권사들이 목표주가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면세점을 정리하는 것이 기업 실적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아예 사업을 접는 것도 방법이지만,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브랜드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한국 면세점만의 개성'을 살려야한다는 것이다. 무신사, 올리브영 등 면세점이 아닌 매력적인 선택지가 넘쳐나는 환경이다. 인기있는 한국산 제품들을 택스리펀도 받으며 알뜰하게 구매할 수 있는 상황에서, 면세점이 내세우는 '명품' 수요는 점점 더 떨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로컬 매장들과 차별화를 꾀하려면 한국산 명물이나 주류·과자 등 여행객 맞춤형 상품을 개발해 브랜드화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세계면세점이 최근 발표한 계획처럼 고객당 구매액이 높은 '프리미엄 비즈니스 관광객'에 집중하는 전략도 하나의 대안이다. 복합적인 위기에 놓인 면세업계가 과연 길었던 불황을 끝내고 재도약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yeo-on03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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