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시장 급성장에 쿠팡·무신사·백화점 속속 진출…"제도는 걸음마"
당근마켓 등 C2C 플랫폼 중심에서 대형사 직접 유통
중고 시장 2008년 4조 규모에서 올해 43조 급성장 전망
중고품 세금계산서 ·가품 논란 등 해결 과제도 많아

[서울경제TV=이채우 인턴기자] 최근 중고 루이비통 가방을 눈여겨보던 30대 직장인 L씨는 당근이나 중고나라가 아닌 쿠팡에 접속했다. L씨가 쿠팡 앱의 '알럭스'에서 'pre-owned'를 검색하자 중고 명품이 우르르 뜬다. L씨는 개인 간 거래가 아닌 쿠팡과 같은 대기업을 중간에 두고 거래를 하면 가품 문제·가격 책정 문제 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지고 거래가 좀 더 수월해졌다며 쿠팡에서 중고 명품을 구매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자사 서비스 ‘알럭스’를 통해 중고 명품을 판매하고, 무신사는 ‘무신사 유즈드’를 통해 중고 의류를 판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를 지원한다. 현대백화점은 ‘바이백 서비스’를 통해 중고 거래를 수거하고 자사 포인트를 소비자에게 지급하고 있다. 기존 C2C로 진행되던 중고거래가 C2B, B2C로 바뀌며 중고거래의 행태가 조금씩 전환되고 있다. 이런 플랫폼의 진화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 편의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중고거래에 대기업들이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중고 거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하지만 일각에서는 팽창하는 중고거래 시장의 속도를 의제 매입 세액공제, 중고물품의 신뢰도 문제 등 각종 제도와 체계가 못 따라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 중고나라부터 당근까지, 중고거래의 발전
본격적으로 개인 간 중고거래가 활성화된 건 2003년 12월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가 개설된 이후부터다. 중고나라가 물리적으로 먼 개인 간의 거래를 지원하면서 당시 중고거래는 알음알음 하는 거라던 인식이 바뀌었다. 이후 중고나라는 개설 당시 개인 간 중고거래를 중개해주는 단순한 카페였으나, 이후 점차 수많은 회원수와 중고 거래량을 보유한 사이트로 거듭났다.
2010년, 웹 기반의 중고나라가 모바일로 전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모바일 시장을 공략하며 ‘번개장터’가 시장에 등장했다. PC가 아닌 모바일 사용자를 겨냥한 ‘번개장터’는 간편한 사용성을 앞세우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2015년 설립된 ‘당근마켓’은 동네에서 중고물품을 직거래 할 수 있는 ‘지역 기반’ 중고거래 스마트폰 앱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중고나라, 번개장터와 달리 사용자 위치를 기반으로 한 반경 6km 내외의 거래만 지원하면서 중고거래의 고질적 문제였던 사기문제를 보완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당근의 초반 인지도는 낮았으나, 점점 입소문을 타면서 2025년 국내 중고거래 앱 이용률 57.7%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지금까지의 중고거래 흐름은 기업이 단순히 개인과 개인 간 중고거래를 중개해주는 C2C 플랫폼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중고거래 시장은 대기업과 백화점들이 뛰어들기 시작하며 C2B, B2C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 쿠팡·무신사·白까지…중고거래 시장에 속속 뛰어드는 대기업들
지난 8월 쿠팡은 자사 서비스 ‘알럭스’를 통해 중고 명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2024년 1월 쿠팡이 인수한 영국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인 ‘파페치’의 인프라와 내부 데이터를 적용해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구찌 등 명품 브랜드의 의류·가방 뿐만 아니라 피아제, 오메가 등 명품 시계까지 중고 명품을 자사 배송 서비스인 ‘로켓 배송’과 연계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달, 무신사 역시 중고 거래 시장에 뛰어들었다. 무신사는 소비자가 안 입는 옷을 집밖에 내놓기만 하면 무신사가 수거해 검증 과정을 거친 후 판매 대행까지 해주는 서비스 ‘무신사 유즈드’를 론칭했다. 판매자는 기존 중고거래 서비스에서 필수적이었던 사진 촬영, 게시물 작성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거래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유통업계뿐만 아니라 백화점 역시 중고거래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2월부터 자사에서 구매한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해 중고 제품을 수거·검수 후 H포인트로 보상하는 '바이백' 서비스를 시범운영했다. 고객이 판매 신청을 하고 상품을 박스에 담아 문 앞에 두면, 현대백화점이 상품 수거 및 검수를 진행한다.
이어 7월, 롯데백화점 역시 '그린 리워드 서비스'를 도입했다. 소비자가 앱 내 '그린 리워드 서비스' 탭에서 중고 제품 정보를 입력하고 수거 주소를 등록하면, 롯데백화점이 직접 방문해 제품을 수거한다. 보상은 최소 5000원부터 최대 28만 원 상당의 자사 엘포인트로 지급된다.

▲ 빠르게 성장하는 중고거래 시장, 그 배경은?
이처럼 유통 업계가 중고거래 서비스에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중고거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008년 4조 원에서 2024년 35조 원으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올해는 2008년 대비 975% 성장한 4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는 건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중고거래 시장도 마찬가지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글로벌 중고거래 시장은 2021년 270억 달러(한화 약 364조 5000억 원)에서 올해는 770억 달러(한화 약 1039조 5000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과거에 비해 중고거래에 대한 소비자 인식은 크게 개선됐다. 대한상의가 발표한 ‘중고제품 이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중고거래에 긍정적이라고 답변한 비중은 75.3%, 부정적 답변은 1.9%에 불과했다. 특히 응답자 절반 이상인 51.8%가 “3년 전보다 중고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다”고 밝혀 중고 거래가 일시적 유행이 아닌 점차 일상화된 소비문화로 자리 잡을 것을 알 수 있었다. 응답자 10명 중 4명(37.3%)은 앞으로 중고품 구매를 더 늘리겠다고 답해 성장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아울러 고물가·경기 불황으로 ‘가성비’로 옮겨간 소비 트렌드 역시 중고거래 시장을 빠르게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고물가 기조가 소비자들의 ‘짠물 소비’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
실제로 대한상의가 발표한 ‘세대별 소비성향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대 평균소비성향은 2014년 74%에서 2024년 70%로 하락했다. 평균소비성향은 가계가처분소득 중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가계소득이 늘어난 현재가 오히려 10년 전에 비해 하락한 것을 알 수 있다.
‘지속가능성’, ‘경험소비’ 역시 최근 소비심리에서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소비자들은 비싸게 소유하기보다 원하는 만큼 싫증나지 않을 때까지 이용하는 사용경험을 중시한다. 또한, 유행에 따라 빠르게 생산되고 폐기되는 ‘패스트 패션'이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자원 순환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졌다.

▲ “세금계산서 없이 사업을 어떻게 하나요”…분통 터진 빈티지샵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고 거래 시장의 속도에 각종 제도와 체계는 그에 맞춰 성장하고 있지 못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것이 중고제품에 대한 ‘의제 매입 세액공제’ 대상 확대에 관한 문제다.
의제 매입 세액공제란 세금계산서가 없는 농·축·수산물 등을 매입했을 때도 일정 비율을 매입세액으로 간주해 공제해주는 제도다. 쉽게 말해, 실제 세금계산서가 없어도 매입 비용을 인정해줘 부가가치세 부담을 줄여주는 장치인 것. 하지만, 현행 제도 상 의제 매입 세액공제가 적용되는 중고물품은 중고자동차에 한정돼있다.
의제 매입 세액공제의 예시를 들어보자. 사업자가 원재료를 10만 원에 사와서 15만 원에 팔면 물건을 판매할 때 발생한 부가세 1만 5000원 중 앞서 사올 때 발생한 부가세 1만원은 빼고 5000원만 세금으로 낸다. 하지만 중고품처럼 세금계산서가 없는 물품을 사오면, 매입세액 공제를 못 받아 1만 5000원을 그대로 내야 한다. 만약 이 혜택이 중고물품 전반으로 확대되면 내야 하는 세금이 대폭 줄게 되는 것.
국내에서 중고의류 거래 빈티지샵을 운영하려면 원칙적으로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한다. 소득이 발생하는 순간 과세 대상이 되기 때문에 매출 규모가 작더라도 신고는 필요하다. 특히 연 매출이 8000만 원 미만이면 간이과세자로 분류돼 부가가치세 부담이 줄지만, 이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일반 과세자로 분류돼 본격적인 세금 신고·납부 의무가 따른다.
문제는 중고의류 거래 사업은 세금계산서 발급이 동반되지 않는 매입 구조라는 점이다. 중고의류 거래 사업 매입은 비공식 거래 비중이 크다 보니 증빙 확보가 어려워 합법적인 세무 처리에 공백이 생긴다. 이 때문에 매출 규모가 커져 사업자 등록이 필수적인 상황에서도 업계는 “증빙이 불가능한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법을 저지르는 상점이 많다”고 전했다.
실제 현장의 목소리도 비슷하다. 온라인에서 빈티지샵 3개를 운영 중인 A 대표는 “세금계산서가 아예 없이 매입을 해서 사업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세금을 내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쥐어짜내 지출 증빙 자료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A씨는 “의제 매입 세액공제가 확대된다면 빈티지샵들이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는 사업자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급성장한 중고거래 시장, 남겨진 과제는?
중고거래에 대해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인 상품 신뢰도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번개장터는 지난해 성수동에서 연 ‘번개 플리마켓 럭셔리’ 행사에서 판매한 루이비통 가방이 가품으로 판정되며 논란에 휩싸였다. 정품 검수 서비스 ‘번개케어’를 운영해온 번개장터였지만, 이번 행사에서는 검수 대상이 아닌 제품도 판매돼 소비자 불만이 커졌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 수수료 부담률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 8월 서비스를 시작한 무신사 유즈드는 책정된 상품의 가격에 따라 소비자에게 수수료를 매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1만원 미만의 상품에는 최대 80%의 수수료를 매긴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만약 1만원으로 책정된 상품을 무신사 유즈드를 통해 판매한다면, 판매자 손에는 최소 2000원의 차액이 남게 되는 것. 이러한 논란에 무신사는 수수료를 인하해 다음달 11일부터 2만원 미만 상품에 38% 수수료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신뢰하는 대기업의 진출에도 불구하고 정품 신뢰와 수수료를 둘러싼 크고 작은 논란들은 여전하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중고거래 시장의 건강한 발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결국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고거래 시장이 하나의 산업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제도적 보완과 함께 신뢰·비용 문제까지 해결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 중고거래 시장이 안정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dlcodn1226@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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