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의 정치워치] 아베 외교의 아시아적 모순
냉전기 일본 외교는 반응형 국가(reactive state)로 설명되어 왔다. 미국의 압력에 반응하는
소극적인 외교를 보여 온 것이다. 국익을 추구하기 위한 국가 행위가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안전보장을 미국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전후(戦後)일본은 비효율적인 재군비 비용을 최소화하고 안전보장을 미국에 맡긴 채 경제중심의 외교를 전개해 나갔다. 일본이 걸어갈 길을 해외무역에 의한 경제대국 건설에서 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상인적(商人的) 국제정치관이었다.
냉전기 일본 외교의 방향성을 제시한 정치가는 요시다 시게루(
요시다 독트린은 (1) 냉전상황에서 미국의 편에 서는 것 (2) 일본의 방향은 무역을 통한 경제대국 건설 (3) 안전보장은
미일안보조약으로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이 요시다 독트린은 냉전 기간 일본 외교의 근간이었다.
이러한 일본외교에 저항이 생겨난 것은 걸프전 이후였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걸프전에 개입한 미국은, 일본에 대해 동맹국으로서 공동행동과 전비의 지출을 요구했다. 당시
일본은 헌법 9조에 의해 군사적이지 않은 형태의 협력을 모색한 결과,
10억 달러의 지원을 행하게 된다. 이러한 일본에 대해 미국 내에서는 "too little, too late"이라는 비아냥이 쏟아냈다. 그러자 9월에 30억 달러, 91년 1월에는 90억 달러의 추가지원을 하고, 총 130억 달러의 지원을 했다. 그런데도 다국적군에 참가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참전국들은 일본이 금전적 협력만을 하고 위험을 함께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미국 의회에서도 참전하지 않은 일본과 독일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제출하고, "함께 피 흘리지 않는 국가, 일본"이라 조롱하기까지 했다. 일본외교는 경멸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일본 외교의 패배로 기록된 이 일은 보통국가론, 개헌 논쟁으로 이어진다.
아베 외교는 일본을 반응형 외교에서 적극적 외교로 전환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베 외교는 (1) 미일동맹을 강화해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2) 민주주의/시장경제 국가와 관계를 공고히 하며 (3) 주장하는 외교를 통한 역사 재인식을 추구한다. 국가 이익을 적극적으로
설정하고, 강한 일본의 부활과 적극적 평화주의를 자위대 강화로 실현하고자 하며, 중국과 한국에게 할 말은 하자는 주장하는 외교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국내정치와의 연계를 시도하고 있다.
여기서 아베 외교의 모순점을 찾을 수 있다. 미일동맹 강화는 전략외교로서, 민주주의 국가 연대는 보편적 가치
외교로서 요시다 독트린과 크게 상이하지 않지만, 주장하는 외교는
우파적이며 강경하다. 전략외교와 보편적 가치 외교는 타국과의 협력을 목표로 하지만, 주장하는 외교는 한국과 중국과의 갈등을 감수하고라도 일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일방성이 강하게 관찰된다. 아베 외교의 아시아적 모순이다.
특히 전략외교와 주장하는
외교가 어긋나는 부분은 한일관계에서이다.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주장하는 외교와의 정합성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을 쉽게 포용할
수 없는 한계를 갖는다. 미국과의 동맹이라는 현실주의적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주장하는 외교와의 충돌이라는 자기모순 때문에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 보편적 가치 외교와 주장하는 외교 역시 모순적이다. 민주국가연합을 주장하면서 아시아의 민주주의/시장경제 국가인 한국과의 협력에 소극적인 것은 영토 갈등과 역사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겠다.
아베 외교는 전략적이며 적극적이지만,
아시아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동아시아 세력전이라는 상황 변화 속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실현해 낼 수 있느냐가 아베 정권의 대외전략 정합성을 알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실현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김동환 박사 / kdhwan8070@naver.com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정책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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