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금융권 ‘실적 괴물’의 탄생 이야기
[서울경제TV=고현정기자]
서울 동대문의 한 은행에는 특별한 고객 관리법이 있다. 바로 노래방에서 VIP 고객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한 소절씩 돌림 노래를 하는 것이다. 이는 20대 은행원들이 고령의 자산가들과 세월을 뛰어넘는 평생 우정을 다지는 비법으로, 선배가 후배에게 전수해왔다. 젊음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는 은행원은 생존 경쟁에서 도태될 뿐이다.
각별한 사이가 된 고객과 은행원은 서로 귀찮은 건 생략한다. 고객은 자신이 투자할 상품에 대한 긴 설명을 듣거나 상품 내용을 직접 따져보기를 귀찮아하기에, 은행원은 우선 상품 가입을 진행한 뒤 녹취 파일을 사후 제작한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을 들으셨죠?"라고 묻고 은행원이 목소리를 살짝 바꿔 "네"라고 하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다.
얼마 뒤 이 은행에서는 '실적의 마술사'들이 탄생한다. 그들은 차갑게 식어버린 휴면 계좌들도 1초만에 살려낸다. 고객이 새로 접속한 것처럼 보이도록 고객 몰래 비밀번호 하나만 바꾸면 된다. 그렇게 4만여 건의 비밀번호가 주인 몰래 바뀌게 됐다.
DLF, 라임사태부터 '비밀번호 도용' 사건까지. 영업과 실적 압박에 짓눌린 금융인의 도덕적 해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영혼을 팔아넘기는 순간, 그들의 눈에서 사람은 사라지고, 실적만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 은행원은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며 "부끄럽지만 나도 동조했었다"고 자조했다. 눈 앞의 이익만 좇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 우리 금융의 민낯은 실로 천박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부쩍 이같은 사건 사고가 반복되며 금융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 어떤 것보다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업에 이는 사실상 사형 선고와도 같아 더 큰 문제다. 결국 금융인 모두가 '실적 괴물'이 된다면 개별 회사는 물론 업계의 목을 조르게 된다.
때문에 우리 금융권의 과도한 실적 강박에 대한 진단이 시급하다. 특히 금융사 경영진 차원에서의 직원 평가 혁신을 위한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 사실 회사에 정말 필요한 실적이란, 그런 일차원적인 게 아니지 않나./go838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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