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의 정치워치] 기시 노부스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재임기간 1241일, 57년2월~60년7월)는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다가 불기소 처분을 받는다. 이후 자주헌법제정을 주장하며 정계 복귀 4년 만에 총리의 자리에
오른다. 총리에 취임한 기시는 미국을 방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과 미일안보조약 개정에 합의하였으며 이 안보조약은 현재까지 60년 동안 이어져 온 미일동맹의 기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새 안보조약의 발효를 지켜 본 기시는 60년 7월19일 퇴진하게 된다.
안보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나머지 그의 '일본의
경제적 자립'과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경제정책의 방향성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57년 2월, 총리에 취임한 기시가 가장 역점을 둔 경제정책은 중소기업 분야였다. 전후 일본은 경공업 중심의 수출진흥으로 외자획득을 노리고 있었고, 특히
외교관 출신인 요시다 전 총리는 서구형 자유경제론자로서, GHQ주도의 재벌해체와 독점금지법에 의한 자유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을 폈다. 당시 일본경제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특수에 젖었으나, 미국의 값비싼 원재료를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무역수지는 적자였으며, 특수가
끝나자 중소기업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요시다 노선을 기시는 이렇게 비판한다.
“중소기업은
본질적으로 약자의 입장이며, 자유경쟁 속에 방임해 버리면 생존하기 어렵다. 이를 해소할 길은 국가가 확고한 중소기업대책을 수립하여 보호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기시의 중소기업정책은 중소기업단체조직법(57년)으로 이어져 중소기업의 상공조합 창설, 생산 조정, 가격 조정, 대기업과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게 된다. 강한 중소기업의 육성으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전략인데, 높은
기술력을 갖는 중소기업의 생산력으로 경제를 지탱하는 일본의 경제구조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통제에 의한 산업보호와 경쟁력 향상이라는 기시의 가치관은,
상공성 관료 시절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시는 1차
대전 후 불황에 휩싸인 미국과 유럽을 시찰하며, 미국의 공업력에 놀라워했고, 피폐해진 자유경제의 대국 영국의 참상에 실망하고, 영국 이상으로
피해를 입었음에도 국가주도로 국가를 재건해 나가는 패전국 독일의 산업합리화 운동을 지켜보았다. 특히
독일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원이 없음에도 발전된 기술과 경영의 과학적 관리로 경제발전을 꾀하고 있었다.
일본의 전후 부흥 과정에서도 기시는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을 진행해 간다. 1957년 일본 최초의 고속도로인 메이신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하였고, 민간
주도의 석탄화력발전에 더해 발전단가를 낮추는 수력발전에도 힘을 쏟고 산업전체의 생산 비용을 줄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기시의 정책 중 역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것이 일본의 사회보장제도라 할 수 있다. 기시는 3년의 총리 재임 기간 중에 '국민건강보험법', '최저임금법',
'국민연금법'을 제정하면서 일본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였다.
당시 건강보험에는 농업인이 가입할 수 없고, 후생연금은 자영업자인 경우 해당되지 않았으나
이를 해소하고, 최저임금법 역시 중소기업 근대화와 체질개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중소기업육성, 사회 인프라 정비, 사회보장은
이를 테면 '기시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기시의 손자인 아베 총리의 '아베노믹스'가 엔저와 금융완화로 수출대기업의 이윤을 극대화시키면서 중소기업과 지방경제를 피폐하게 만들고 격차의 확대로 이어진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성을 갖는다. 보수정치의 상징으로만
기억되던 기시는 일본 사회보장제도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서도 평가되어야 하는데, 기시가 60년 전 구축해 놓은 일본의 사회안전망이 손자의 시대에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 역사의 얄궂음을 상기시킨다.
김동환 박사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정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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