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의 정치워치] 자민당 지배의 논리
일본의 국민보험제도 논의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국민보험제도에 손을 대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법한 발언을 하면서 일본 정계가 술렁이고 있다. 국민보험은 전후 일본 사회의 중심제도이며, 정부/여당에게 있어 가장 큰 정치 이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는 가뜩이나 재정적으로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여서 스가 총리 발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스가 총리는 2021년 1월13일 기자회견에서, 의료관계법 개정에 관련해 "국민보험을 유지해 가는 과정에 대해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했다.
많은 이들이 이 발언에 대해 '귀를 의심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총리가 명확한 의도를 갖고 발언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보험제도 개편이
수면 하에서 논의되어 온 것은 사실이며, 지방은행과 중소기업의 경영부진 등으로 인해 제도적 구조개혁에
의욕을 보이는 스가 총리가 의료제도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일본에서는 보험료 체납이 없는 한, 기본적으로
30% 자기부담 원칙(중증 질환에 대해서는 고액요양비제도에 의해 상한초과액을 전액 공비로
부담)으로 병원에 다닐 수 있다. 국민보험제도 덕분인 것이다. 이 제도는 영국의 국민보험 서비스와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병원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우호적인 평가를 받는다.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실감했겠지만, 질환이 있을 때 병원에 가지
못한다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일본 의료제도는 국민생활의 기반이라 할 수 있을
존재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2018년도에는 무려 43조4000억엔이나 지출되었다. 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액수다.
이 중 환자 자기부담과 보험료로 커버할 수 있는 것은 약 60%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공비이다. 국가와 지방이 부담하는 공비부담은 17조엔에 육박하며, 이 금액은 일본 방위비(약 5조 3000억엔)의 세 배가 넘는다.
한편, 정치적으로 볼 때, 이 제도는
정권의 강력한 지배력의 원천이기도 했다. 매년 43조엔의
지출이 있고 이를 어떻게 분배할지 정권이 결정해 왔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에 필적할 만한 규모의 시장을
정부의 결정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정치적 매력을 지닌다. 이 구조는 전후 자민당 지배의
근원이며, 그렇기 때문에 발본적인 제도개혁 논의가 어느 정도 터부시 되어 온 것이다. 의료비에는 연금과 같은 적립금이 존재하지 않고 보험료 수입이나
국고보조가 줄어들게 되면 곧바로 재정유지가 어려운 게 제도적 약점으로 지적 받아왔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의료재정은 압박 받고 있기에 어떤 형태로든 개혁은 진행되어야 한다. 스가 총리의 발언은 실언이었겠지만, 일본 보험제도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동환 박사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정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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